◇ 허술한 심사 이유 줄소송, 법원 투자자 일부승소판결
증권사들이 잇딴 악재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수수료인하압박에 이번엔 회사채발행할 때 부실심사로 이를 매입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이다. 건설사, 해운사 등 회사채발행을 맡은 증권사들로부터 관련 채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해당기업의 부실로 손실을 입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다.
법원이 최근 이같은 관련소송에 대해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증권사는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 11부(부장판사 최승록)는 개인투자자 유모씨가 지난해 6월 성원건설 회사채발행 주관사인 키움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유씨가 청구한 배상금액 2억7000만원 가운데 60%인 1억6000만원을 키움증권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주관사인 증권사가 발행사의 부실징후 설명의무를 위반해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손해의 상당부분을 주관사가 배상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성원건설은 지난 2009년 9월 무보증 전환사채(CB) 360억원을 발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키움증권이 발행주관사를 맡았다. 3개월 뒤 이 회사는 임금체불에 따른 노조파업 등으로 회사경영이 악화됐으며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한해운 부실심사의혹을 받는 현대증권도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리게 됐다. 일반투자자 130여명은 대한해운의 채권발행 및 증자를 맡은 주간사였던 현대증권을 상대로 약 4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지난해 11월에 현대증권은 대한해운의 회사채발행의 주간사업무를 맡아 공모업무를 진행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대한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 약 200여억원의 손실이 발생, 부실발행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소장에 따르면 발행 당시 주간사인 현대증권은 타증권사의 각종 분석보고서와 다르게 기업전망을 투자설명서에 긍정적으로 기재했으며 이는 일반투자자에게 잘못된 판단을 이끌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한해운 대표이사를 포함한 현대증권 IB 본부장외 2명에 대해서도 △대한해운 대표이사와 현대증권 발행 담당자가 친인척 사이라는 점 △법정관리 직전에 대한해운 관계자로부터 법정관리신청에 대한 사전연락을 받은 것 △법정관리 보름전에 현대증권 IB직원들이 내부통제기준을 위반하여 대한해운 자금담당 임원들과 부적절한 중국여행을 다녀온 점 등을 내세워 검찰에 사기죄로 고발을 진행하고 있다.
◇ 개별조사 권한은 없고 책임은 과중, 업계 벙어리냉가슴
업계는 이같은 부실심사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발행사가 중심인 회사채 시장에서 해당 발행회사가 고의적으로 누락하면 주관사로선 방법이 없다”며 “이같은 현실적 한계에서 증권사에 과도한 책임을 묻는 건 억울하다”이고 말했다.
현대증권도 결과는 안타깝지만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주간사로서 고객에게 피해를 준 점에 대해서 도의적으로 유감”이라며”1차 신고서 제출 이후 대한해운의 IFRS분기 회계감사, 2개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결과도 준용하여 수정 유가증권 신고서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번 키움증권사례처럼 증권사가 중개역할에 한정된 모집인수방식에서는 더 그렇다. 이는 발행회사가 스스로 인수위험을 부담하고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에 관한 모든 업무를 제 3자인 발행기관에 위탁하는 방법을 뜻한다. 청약미달에 따른 발생위험은 증권사가 아닌 발행사가 책임지는 구조다. 발행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는 만큼 증권사의 모집인수에 따른 수수료가 낮다. 비용 대비 인력의 한계로 증권사가 실질적인 위험 인수·평가를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생사로서 권한은 적으나 책임은 과도한 것도 문제다. 회계법인이나 신용평가의 데이터를 의존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증권사가 피해자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개별적인 조사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재무제표상 미지급금, 외상거래 등이 있어도 해당회사가 그 사유를 속이면 파악할 길이 없다”며 “결국 신용평가사의 등급이나 회계법인의 제무제표를 근거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건이 터지면 이를 믿은 증권사도 피해자”라고 하소연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회사채시장에서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이 필요한 크레딧이 낮은 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우량회사채로 몰려 전체 자본시장발행시장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