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전직 대형은행장 출신 금융계 한 인사는 “주택담보대출 연착륙은 금리와 통화정책, 거시경제정책에다 부동산 대책 등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풀 수 있을까 말까 한 사회적 숙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적 효과에 연연하면 할수록 풀기 어려워지거나 오히려 덧날 우려가 큰 만큼 끈질기게 매달려 차근차근 풀어 간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금융연구원 전문가는 패턴과 구조를 바꾸자면 단기간에 성패가 갈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기와 중장기 효과를 각각 노리는 짜임새를 갖추는 데 지혜를 모으면 될 일이라고 진단했다.
◇ 숫자 맞춘 듯 한데 합격점 주는 곳 없다
월별 가계대출 증가율이 0.6%를 넘지 않도록 하라는 감독기구 압박은 일견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4대 금융지주 주력 자회사와 농협 등 5대 은행만 보면 8월들어 30일까지 가계대출 증가규모는 2조 976억원으로 7월 말 333조 6865억원의 0.63%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표 참조〉0.999% 증가율을 달린 우리은행을 뺀다면 8월 중순 한 때 0.8%까지 치솟았던 가계대출 증가율을 0.198%로 반전시킨 농협의 활약 덕분에 당국 목표치엔 너끈히 들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0.6% 초과 사실이 감지됐을 무렵 일부 은행들이 초비상적인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수치였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다. 대출 심사를 강화 선에서 그쳤다면 내용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고정금리·분할 상환 등의 특정 대출만 취급하랴, 만기가 온 경우 상환을 적극 유도하랴 절치부심한 결과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당장 이달 초가 어떤 양상을 띨지가 문제다. 은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억눌렀던 대출 풍선을 정상 압력으로 돌리겠노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때가 마침 추석 대목과 겹쳐 있다. 주택담보대출 기조는 고정금리, 비거치식 위주로 돌려 세우며 버틴다 지만 소비자들과 마찰은 여간 불편스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일반적이다.
◇ 세제혜택 추가하고 은행 대변신 이끌어야 기선 유지 가능
나아가 은행권 관계자들과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현재 여건을 그대로 두고 0.6% 상한선을 지키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청한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은행 수익과 주가에 돌발 악재가 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가계부채 구조 개선 여부에 따라 은행업은 물론 금융산업의 안정성이 좌우되기 때문에 낙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나라 주택담보대출은 과도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끌어낸 부동산 가격 거품에다 외국에서 흔히 부르 듯 ‘홈 에쿼티 론’ 즉 부동산을 담보로 자영업에 나선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는 데서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어 장기적 해결 모색이 불가피 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또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를 폭주시킨 동력으로 시장금리 연동형에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만 존재하는 대출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사실을 지목한다.
따라서 정부가 고정금리·비거치 분할상환식·장기 등 3각 목표를 제시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지금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이들 셋 다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 소비자 체감 혜택·은행 압박은 퇴로마련 병행을
심지어 어떤 전문가는 “31일 한은 통계에서 알 수 있듯 신규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점유율은 채 15%도 안되고 핵심 원인은 금리 경쟁력에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세제혜택을 주더라도 단기간에 고정금리 상품이 주류로 올라서기는 버겁다”고 단언한다.
금융연구원 이명활 연구위원은 “변동금리 상품에 비해 금리 차가 1% 포인트 미만으로 들어온다면 고정금리 상품이 각광을 받을 수 있다”며 추가 세제혜택 마련 필요성을 거론했다. 거액 부동산인 경우를 빼고 국민주택규모 이하 실수요자들에게 세제혜택을 베푼다면 체감효과가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민간 연구기관 한 전문가는 “고정금리 유도가 당장 어렵다면 분할상환과 장기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의 입지를 넓혀 주고 은행들이 고정금리 상품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살펴서 장애요인을 하나씩 걷어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장을 지낸 금융계 인사는 은행권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바라는 방향은 단순할 것이라고 살폈다. “각 경제주체들이 팀웍을 탄탄히 한 상태에서 가계대출 연착륙을 향해 발맞춰 뛸 수 있다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 5대 은행 8월 가계대출 증가폭 〉
(단위 : 억원, %)
(자료 : 각 은행)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