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일 기준으로 보름 초과…무형의 손실 측량불가
인터넷뱅킹과 자동화기기 처리비율이 70%를 웃도는 국내 은행거래 문화가 지급결제 지연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막아 주고 있지만 가뜩이나 낮았던 수익성을 감안하면 2분기 영업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심지어 경쟁 시중은행들 임직원들마저 “7~8월이 하한기라서 악영향이 적다 손 치더라도 사소한 불편에다 원하는 업무를 다른 은행에서 처리하는 일이 빈번해 질수록 무형의 손실 규모는 따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영업현장에 있는 직원이나 파업집결지에 모인 조합원이나 장기화에 따른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지난 7일 리차드 힐 행장이 강원도 속초 파업집결지 방문 이후 급속도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는가 했지만 지난 주 별다른 진전 없이 장기화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이 은행 노사간 협상 시계는 지난 10일 당시 형성했던 절충지대에 멈춰 있다. 노사는 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위원회의 구성방안, 회의방식, 의제설정 등을 놓고 상당 부분 의견접근을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직원을 대상으로 한 개별성과급제 도입이 명시적으로 담보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됐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전직원 대상 개별성과급제 도입을 확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고 노조는 그렇게 할 경우 단기실적에 급급한 무리한 영업이 속출하고 살인적 노동강도와 직장내 과당 경쟁 등 다방면에 걸친 부작용이 예견된다며 반대 입장을 펴며 맞서고 있다.
◇ 2011년 여름까지 끌어온 지난해 임단협이 파업으로 비화
파업이 장기화하고 협상이 교착상태로 빠진 것은 협상 쟁점 상으로는 개별성과급제 전면 도입을 둘러싼 노사간 첨예한 입장차와 양보 없는 대립 때문인 것으로 비춰진다.
이에 대해 SC제일은행지부 김재율 노조위원장은 “2011년 한 여름 파업에 이른 이유가 2010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결렬때문이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냐?”고 묻는 것으로 은행 경영진을 비판을 대신했다.
그는 특히 “나머지 아무 쟁점도 남지 않은 임단협 사항에 대해 타결하면 파업은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개별성과급제에 대해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2011년에 도입하고 가동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볼모로 2010년 임단협 타결을 거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은행 경영진은 3년 전부터 도입하기 위한 노사 협상을 진행했던 사안이기 때문에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 입장과 설명을 종합하면 개별성과급제 도입 여부를 빼고 2010년 임단협 사안만 합의하고 노조원들이 추인해주면 이번 파업은 당장 그날로 끝날 수 있는 일이지만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노사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성과급제 도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상당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졌는데 전면실시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 경영전략·성과보상 정책에 대한 신뢰 부재로 진통 증폭
그렇다면 제 3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번 파업 장기화 이유로 예측가능성, 객관성, 공정성 등 여러 측면에서 노사간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은행지주회사 고위관계자는 “성과평가에 따른 보상의 격차를 넓히면 영업실적은 반드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시중은행에도 도입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충분히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면서 부작용 방지책을 제시해도 국내 상황에선 노사 타결이 쉽지 않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기 도입에 애쓰기보다는 성과보상의 차이를 확산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는 접근법이 아쉬워 보인다”는 견해를 내놨다.
외국계 은행과 국내 시중은행 모두 근무했다는 한 대형은행 간부 K씨는 “개인적으로 개별성과급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면서도 “개개인의 성과를 계량화하고 그 수치를 바탕으로 성과급에 큰 차등을 둘 수 있는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IB분야나 좀 스페셜한 업무들중에는 계량화하기 쉽고 갭이 큰 차등연봉제로 가더라도 무리가 없는 것도 있지만 시중은행 일반 영업점과 본부부서 성과평가는 개별화하기 어려운 측면 또한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2금융권 노조 한 관계자는 “증권업계 등 다른 권역에서 훨씬 파격적인 성과보상제도가 도입돼 있긴 하지만 시중은행의 공공성과 한국 금융시장 여건 등을 따져 보면 전면적인 개별성과급제 도입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은행권 차원의 합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감대 확보에 실패한채 파업을 초래한 것은 노와 사, 고객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금융계에서 최장 파업기록은 외은지점으로는 지난 1993년 씨티은행이 전면 파업 2개월에 부분파업 6개월이 최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시중은행은 지난 2004년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한미은행 노조가 벌인 18일 간의 파업이 최장기록이었는데 국내 은행 기록은 지금 새로 쓰여지고 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