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경색 위기가 언제 불어닥쳐 회사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달러는 물론 원화까지 끌어 모으는 현상이 번지고 있다.
이미 저축은행,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위기감에 휩싸여 있으며 은행 역시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외화 자금난 심각…10월 달러 대란설도
국내 은행들의 외화 차입은 사실상 중단되는 등 외화자금시장의 경색도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의 구제금융법안 통과 지연 등으로 달러가 시장에 풀리지 않고 있는데다, 달러 여유가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나 민간기업들이 돈을 풀지 않으면서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 조달 창구가 막혔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도 이런 상황에서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으로서는 최근 시장 상황에 대해 뾰족한 대안이 없을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한국 정부와 미국의 구제금융법안 통과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 은행권도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환거래를 통해 달러공급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일각에서는 10월 달러 부족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달에 국책은행이 시중은행에 제공했던 단기 외화자금 가운데 27억달러(추정) 정도의 만기가 도래한다. 여기에 5억달러 규모의 외화채권 만기도 돌아온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장기채권은 물론이고, 1개월 이상 외화자금 공급원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시중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역외에서 들어오는 돈이 아예 없다”면서 “일주일로 운용하던 자금도 이제는 초단기로 하고 있어, 10월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달러 만큼은 아니어도 원화 유동성도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것.
한 시중은행 자금부장은 “은행 예금은 계속 들어오지만, 금융 위기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는 바람에 (은행채 발행으로) 중장기 자금을 마련하기는 힘들다”고 호소했다. 채권 수요가 줄면서 발행 금리도 높아지고, 어렵게 발행해도 쉽사리 팔리지 않는다. 그 바람에 시장 금리는 자꾸 치솟는다.
◆ 2금융권 유동성자금 확보에 총력전
제2금융권도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부실화가 가속화 되고 있어 건전성에 비상이 걸려있다. 이에 따라 제2금융권 회사들이 비상경영체제에 속속 돌입하고 있다.
최근 할부·리스사 등 여전업계는 자금조달 길이 완전히 봉쇄돼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도 마찬가지로 장기 안정적인 자금조달을 위해 고금리 수신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할부·리스사는 수신기능이 없어 유일한 자금원인 금융채 발행이 꽉 막혀 외부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8월 중 은행채 발행액은 3조800억원으로 전월보다 4.4% 증가한 반면 신용카드사들의 카드채(5400억원)는 28.0%, 할부금융채(3910억원)는 36.6%나 급감했다. 일부 캐피탈사들은 신용대출을 축소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신규 영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한신정 평가에 따르면 할부·리스사들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2006년 12월말 1.5%에서 작년말 1.8%, 올해 6월말 2.2%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할부·리스사들의 자산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저축은행도 금융불안의 장기화에 대비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최고 7.5%를 넘어선 고금리 예금을 통한 수신 확보경쟁이 치열하다. 이같은 금리 인상은 매주 0.1%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최고 8% 정기예금 출시가 임박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
이처럼 국내 금융시장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면서 국내 금융회사들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우선 우리금융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국제금융위기대응 TFT(태스크포스팀)’를 구성, 국내외 금융혼란에 대비하는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태스크포스에는 우리금융 및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주요 계열사 CEO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 정례회의를 열어 리스크 전략을 논의 중이다. 태스크포스에서 결정된 방침은 그룹 내 전 계열사에 전달되며 시장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는 수시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신한지주와 하나금융도 사실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들은 통합 TF를 구성하진 않았지만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반을 구성하고 수시로 의견을 조율해 시장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캐피탈,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일제히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캐피탈업계는 긴축경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하반기 사업계획을 수정하는 곳들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불안으로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된데 이어 최근에는 그나마 자금줄이 말라서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후문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기관들에게 공문을 보내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리스크 대응체제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석·정하성·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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