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파산 위기에 처한 베어스턴스를 구제하면서 신용위기의 큰불은 껐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달들어 일부 잔불이 화력(火力)을 회복하면서 신용위기가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S&P 등급하향·리먼·CEO 해임..꼬리에꼬리를 무는 악재
최근 신용위기 악재는 지난 2일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월가의 간판 투자은행들인 모간스탠리와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한 것이 시작이었다. S&P는 특히 이들 투자은행들을 6개월 이내에 등급 하향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림으로써 일회성 사안이 아님을 경고했다.
신용위기의 희생자들도 속출했다. 미국 최대 저축대부 업체(S&L) 워싱턴 뮤추얼의 케리 킬링어 최고경영자(CEO)와 미국 4대 시중은행인 와코비아의 케네디 톰슨 CEO가 신용위기로 인한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이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 날인 3일에는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2억달러 이상의 분기 손실을 기록함과 동시에 최대 40억달러 가량의 자금 조달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자금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FRB와 유동성 조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설이 퍼지면서 `제2의 베어스턴스`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루미스 세일즈 등 대형 자산운용사가 리먼브러더스의 채권 매입에 나서면서 `제2의 베어스턴스 사태` 가능성이 줄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 쪽에서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끝난줄 알았던 모노라인 마저.."1년내 서브프라임 상당수 디폴트" 전망도
국제 신평사 무디스가 미국 1,2위 모노라인인 MBIA와 암박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올 초 S&P와 무디스가 MBIA와 암박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리면서 시작된 `모노라인 사태`는 한때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들 회사가 보증하고 있는 2조4000억달러 규모의 지방채 등급이 동반 하향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MBIA와 암박은 등급 강등을 피하기 위해 각각 26억달러와 15억달러를 조달해 신용을 보강했고, 지난 3월 S&P와 무디스가 이들 회사를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모노라인 사태는 사실상 종결됐었다.
그러나 무디스가 또다시 등급 하향 가능성을 경고함에 따라 미국 양대 모노라인들은 또다시 신용보강을 위한 자금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악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4일(현지시간) S&P는 유럽지역의 사모펀드(PEF)들이 재원 마련을 위해 조달한 차입대출(레버리지론)의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올해 기업 부도율이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 소재 투자사인 오핏 캐피털 어드바이저는 1년내 585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래의 상당수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 신용위기의 신호탄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도 지난 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통화 컨퍼런스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금융시장의 기능은 회복되고 있으나 상황이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다"며 "주요 자금시장과 증권화 시장이 일시적인 회복세를 나타내는데 그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시장은 부상 병동..ABS·CDS·모기지·CDO 모두 `덜덜`
시장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우려했던 대로 증권화 시장, 특히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모기지를 기반으로 하는 ABS 시장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와 자동차할부대출, 학자금대출을 기반으로 하는 ABS 시장까지 우려가 만연해 있다.
이들 자산을 담보로 하는 ABS의 금리는 현재 일반 채권금리보다 1.35%포인트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신용위기 발발 직전인 지난해 6월말보다 높은 수준이다.
부도 위험에 대비해 드는 보험 성격의 금융상품인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의 프리미엄도 반등세가 뚜렷하다. 특히 신용위기에 취약한 미국 금융사들의 CDS 프리미엄이 급반등하고 있다.
지난 3일 리먼브러더스가 발행한 5년 만기 채권 1000만달러에 대한 CDS 프리미엄은 25만270달러를 기록했다. 신용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3월 44만7510달러까지 상승한 이후 지난 4월 13만5000달러까지 하락했던 프리미엄이 약 한 달여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모기지 시장 상황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 조사업체 퍼스트 아메리칸 코어로직 론퍼포먼스의 자료에 따르면 서브프라임과 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의 채무 불이행 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알트-에이(서브프라임가 프라임모기지 사이 등급의 모기지 대출) 모기지 대출의 상환 기한을 60일 이상 넘긴 대출자 비율도 11%에 이른다.
신용위기 확산의 주범인 자산담보부증권(CDO) 시장의 상황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JP모간 체이스의 크리스토퍼 플래니건 애널리스트는 "일부 CDO의 가치는 원금 대비 6~46%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신용위기 태풍,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물론 현재 상황을 `베어스턴스 사태` 직전 수준 만큼 악화됐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금융권 인사들은 물론 정책결정권자들까지 신용위기의 태풍이 아직 지나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골드만삭스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추산하고 있는 전세계 은행권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 규모는 1조달러 내외. 현재까지 전세계 금융권이 공개한 손실 규모는 추산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800억달러다.
신용위기의 불씨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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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기자 shmoo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