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결정과 상상력
책의 원고가 완성되자 나는 출판사에 출판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깨고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렇게 되면 참 당황스럽다. 괜한 고생을 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마도 출판사의 판단이 틀렸을 거라고 자위하면서 다른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또 거절이었다.
이쯤 되면 낙담하게 된다. 나의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문장실력이 형편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길은 출판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대대적인 개작을 통하여 원고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기를 부려서 요즘 잘 나간다는 출판사에 원고심사를 의뢰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즉각 반응이 왔다. 출판하겠다는 것이다. 그 출판사에서는 다른 계획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집중적으로 작업을 진행하여 한 달 만에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렇게 푸대접 받던 것이 베스트셀러로 올랐으니 거절했던 출판사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전 세계에 마법신드롬을 일으킨 ‘해리포터’도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던 원고다. 그것을 불룸스웰이라는 출판사가 책으로 엮어냄으로써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렸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있다. ‘출판거절’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부적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결정’을 주도했을 것이다. 최종적인 의사결정자는 아마도 한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의사결정 구조가 대개 그렇기 때문이다. 바로 그 ‘한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을까? 똑같은 원고를 대상으로 전혀 다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상력의 차이다. 상상력이 의사결정의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저명한 외국의 석학이 우리나라 리더들의 결함으로 ‘상상력 빈곤’을 꼽았는데 이번의 출판과정을 보면서 상상력의 가치를 절감하였다. 독자라는 이름의 ‘고객’이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결국 그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당신의 상상력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 상층부와 걸림돌
그 책을 통하여 느낀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그 책은 사원들을 대상으로 구상한 것이다. 상사와 회사에 대하여 충성스런 부하, 일 잘하는 부하가 되자는 생각에서 ‘비서’를 역할모델로 삼았다. 변방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보스처럼 생각하고 보스처럼 실행함으로써 핵심인재가 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반응이 의외였다.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교육대상이 임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왜, 임원들에게 비서강의를 해달라는 것일까? 사정을 알아봤더니 그럴 만 했다.
CEO의 경우, 말은 차마 안하지만 임원들에 대한 불만이 의외로 큼을 이번에 알았다.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은 바로 코밑에 있는 임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CEO가 아무리 훌륭한 경영방침을 세워도 임원들에 의하여 희석되고 왜곡되고 방해받음으로써 결국 CEO의 의중이 하부까지 침투되지 못하고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험악하게 말하면 경영 혁신의 최대걸림돌은 말단 사원이 아니라 임원을 비롯한 간부들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의 CEO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일반 사원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던 나의 상상력에도 결국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이상의 두 이야기는 연관성이 별로 없다. 그러나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는 에피소드라는 면에서 ‘의미 있는’ 공통점이 있다. 연말을 보내며 그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