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찾아든 증시활황으로 인해 자기자본이 늘어난 증권사들이 이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사들이 모델로 하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외국계 선진 투자은행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증권사의 직접투자는 대형 투자은행의 지름길이란 지적이다.
이에 증권업계는 올 초부터 PI팀 신설 등 프린시플투자에 대한 전략수립에 주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직접투자 모색하는 대형증권사들 = 국내증권사 중 PI 전담팀을 신설한 곳은 대우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두 곳이다. 지난해 창사이래 최대 이익을 낸 대우증권은 OTC(장외파생상품)와 PI(프린시플 투자) 등 IB부문 강화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실시하고 신규 수익기반 확보를 위해 PI팀(4명)을 신설했다. IB본부 내에 PI담당 임원까지 따로 두고 전담으로 PI를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투자 대상으로는 국내외 부동산, 부실채권, CB, BW, PEF, M&A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등이 포함된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대우증권 자기자본이 2년새 6000~7000억원이 늘어 프린시플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며 “올해 PI부문 투자여력은 5000억원 수준이며, 분산투자를 기본으로 한 가운데 대상물건에 따라 투자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증권은 보다 규모가 큰 PI센터를 만들었다. 현재 10여명이지만 연내 15명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투자규모에 있어서도 올해 해외시장쪽만 보더라도 6000~7000억원 수준을 투자할 계획이다.
PI센터 관계자는 “투자대상으로 주식, 채권, 실물자산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해외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투자는 심도있게 진행된 물건이 아직은 없다”고 전했다.
우리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도 프린시플투자에 대한 관심은 마찬가지.
다만 팀을 신설하기보단 각 부서별로 투자정보 교환 및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인 것으로 관측됐다.
미래에셋그룹 고위 관계자는 “프린시플투자는 이제 한국시장에서 시작단계에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하고 있다”며 “특히 해외쪽으로는 투자가 임박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미래에셋의 경우 전담팀을 신설하기 보다는 각 부서에서 관련 실무자들간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반면 삼성증권은 PI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삼성증권측은 “변동성이 심한 국내증시에서 직접투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기에 한계가 있다”면서 “고객 자산증대를 통한 자산관리영업을 꾸준히 지향해 나가겠다”고 한발 뺐다.
“업사이드 잠재력 가늠이 PI 성공 관건”
올해 투자여력 2조원, 벤처투자 아픈 기억도
◆ 한계는 무엇인가 = 어디까지를 PI로 볼 것인가. 여기에 증권사들의 고민이 있다. 너도 나도 프린시플투자를 하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투자대상의 포텐셜(잠재력) 감지능력이 관건인 프린시플투자에 대한 경험은 일천하다.
예컨대 현재가치가 100원인 주식이 있을때 이를 90원에 매입해서 110원에 파는 것은 진정한 PI가 아니다. 중개일 뿐이다. 100원짜리를 두고 향후 200원, 300원까지 갈 수 있는지 정확히 판단해 투자한 뒤 두 세배 이상의 이익을 남기는 리스크 감내능력이 관건이다.
증권업계 IB 한 관계자는 “금리가 빠져서 오른 주식에 대해 차익을 남기는 건 PI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업사이드 포텐셜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데 이같은 경험을 한 전문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스닥버블시기에 벤처투자를 했던 증권사들이 대부분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가운데 신기술 투자, 프리 코스탁업체에 대한 투자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증권사 PI 한 담당자 “외환위기 때 프리코스닥에 투자해 다 까먹었던 생각을 하면 몸을 사리지 않을 수가 없다”며 “자신감, 다양한 경험 측면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업계 분위기는 PI투자 일색이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윤곽이 그려지고 투자은행 발판 구축 차원의 수익원 다변화전략이 가시화되자 증권사 CEO들은 올 초부터 프린시플투자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해왔다.
올해 예상되는 주요 증권사의 프린시플투자 규모도 2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주식시장도 좋았다. 때문에 대형 딜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소형 딜을 하기 위한 일정부분의 자기자본 확충에는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과거 벤처에 투자해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경험, 대형 외국계투자은행이 득세하는 시장여건에서 리스크를 감당해가며 투자여력을 키워갈 회사가 얼마나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
금융지주사체제에 속한 증권사들은 은행의 보수적인 리스크 마인드로 인해 여력만큼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사의 직접투자 능력은 외국계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며 “절대적인 자기자본 부족과 홀딩해서 엑시트 할 수 있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어려워서 그랬던 것일 뿐”이라고 자신했다.
물론 국내 공기업의 주식 블록세일, 대형 M&A 외에서는 국내사들의 활약도 상당했다. ABS시장의 경우 국내서 발행하는 물량에 대해 여전히 외국계를 제치고 국내사들이 독주하는 상황이다. 즉 “사람은 이미 훈련돼 있고 단지 돈이 없었다. 이제 돈을 만나 꽃을 피우는 일만 남았다”는 긍정론도 지적됐다.
홍승훈 기자 hoony@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