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 ATM기로 옮겨 다시 시도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직원에게 문의를 했더니 “IC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기기가 따로 있다”는 설명과 함께 직원의 안내로 다른 ATM에 카드를 집어넣었더니 그제서야 거래가 이뤄졌다.
전자통장을 사용하는 고객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상황이다.
지난 2004년말부터 국민은행을 시작으로 각 은행들이 여러 개의 계좌를 하나의 IC카드에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전자통장을 경쟁적으로 선보였으나 그 기능면에서나 활용도, 편리함 등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현실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여전히 인프라가 구축돼있지 못하고 전자통장에 활용할 수 있는 계좌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 ATM 50~70%수준만 전자통장 카드 인식돼= 현재 대부분의 은행들이 전자통장을 발매하고 있다. 처음엔 종이통장 대신에 모든 계좌 정보를 카드안에 있는 IC칩에 내장해 카드 하나로 모든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당초 선전과는 달리 전자통장을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다.
이 전자통장을 자동화기기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IC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ATM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각 은행들마다 IC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ATM이 적게는 전체의 50%수준에서 많아야 70%대 수준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은행과 조흥은행은 각각 70%와 75% 정도여서 그나마 높았다. 나머지에 대해선 구형기기의 경우 내년초 신권이 나오면서 자동화기기를 새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체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말 전자통장을 선보였으며 현재 60%만이 IC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외환은행은 50%로 보급률이 낮지만 올 연말까지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거래내역 조회 및 출력의 경우 일부 은행만이 자동화기기에서 가능하며 대부분 인터넷뱅킹을 접속하거나 창구를 통해 가능하다.
국민은행은 기존에 출력은 가능했고 3월 안으로 조회기능도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들의 전자통장 발급 실적도 좋지 못하다. 지난 2004년 11월 국민은행이 가장 빨리 전자통장을 선보여 그 실적도 은행 중에서는 가장 높았지만 지난 2월말 기준으로 발급계좌는 29만7000좌에 불과했다.
전자통장을 내놓은지 1년이 다 돼 가는 A은행은 2만8620좌(3월16일 기준)에 그쳤고 세달째가 되는 B은행은 7000좌에 불과했다.
대형은행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은행만이 전자통장을 아직 선보이지 않았으며 올 상반기 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C은행의 전자통장 한 담당자는 “사실 우리로서도 인프라가 완전히 구축돼있지 않아 고객들에게 적극 권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입출금·적립식 등 단순업무로 기능 제한적= 은행들은 전자통장을 내놓으면서 적게는 10개, 많게는 30~40개의 계좌를 전자통장 안에 넣을 수 있다며 경쟁적으로 홍보했지만 대부분이 입출금통장, 적립식 및 거치식예금 정도만이 가능할 뿐이다.
현재 국민 조흥은행 정도가 대출업무까지 가능하고 신한은행만이 펀드상품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외화상품이나 펀드 상품은 제외돼 있다.
한 대형은행의 경우 전자통장 가입고객 중 97% 이상이 요구불계좌만을 이용하는 등 대부분 유동성계좌 정도만을 담고 있어 펀드 쪽에서는 니즈가 많지 않아 보인다는게 일부 담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펀드 고객들의 경우 주가의 변동성이 커 종이통장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펀드 고객이나 외화상품 거래 고개들이 늘면서 전자통장에 담을 수 있는 계좌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선 역시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나은행 한 관계자는 “현재 대출을 비롯해 외환 수익증권 거래까지 가능하도록 올해 안으로 개발을 끝내려고 한다”며 “향후 지주사 산하의 하나증권 대투증권 하나생명 등의 상품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D은행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전자통장이라고 하기엔 기능이 다양화 돼 있지 못해 IC현금카드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도 지적했다.
B은행 한 관계자는 “종이통장을 없애면서 창구혼잡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IC카드를 이용함으로써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프라나 서비스 등을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 경쟁적으로 선보이면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