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에 따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따르느라 이미 국내 금융시장의 85% 이상은 개방이 됐지만 나머지 영역이 어떤 방향으로 풀리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8일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신금융서비스나 국경간 공급 등이 이슈로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칫하면 국내 금융시장 잠식을 비롯해 금융소비자 피해 혹은 감독상의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온다.
◇추가 개방 거론될 15% 어떤 게 있나= 최근 OECD자료를 인용한 한국은행의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수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59.4%로 낮았으나 올해부터 시행된 자본거래허가제 폐지를 반영하면 85.1%로 신흥국(터키, 멕시코 등 84.2%)보다 높아진다고 분석했다.<표 참조>
이에 따라 오는 6월 본격적인 한미FTA협상에서는 나머지 15%에 해당하는 일부를 요구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아직 미국측의 요구안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당국과 금융계는 신금융서비스와 국경간 공급 등이 FTA협상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WTO다자간 협상에서 미국측이 강력하게 요구해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국경간 공급은 상대국에 법인이나 지점 혹은 사무소 설립 없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통 인터넷이나 통신 등을 이용한 금융거래 등을 말한다.
현재 국경간 금융거래가 가능한 것은 국제거래 때 필요한 수출입적하보험, 항공보험, 여행계약보험, 선박보험, 장기상해보험, 재보험 등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또 일반투자자가 해외증권을 취득할 때 국내 증권사를 통하지 않을 경우 재경부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며 비거주자의 국내증권 거래 때 상장 및 협회 등록 증권에 대해서는 장내거래를 의무화하고 있다.
외국 수익증권은 상업적 주재 없이도 국내 판매가 허용되지만 국내 판매회사가 판매대행을 해야 하는 등 제한 요인들이 많다.
아울러 특정 국가에는 없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공급되는 금융서비스인 ‘신금융서비스’의 개방 여부도 주목된다.
삼성금융연구소 정승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금융관련 규제는 거의 개방됐지만 상대적으로 보험업이 규제가 많은 편이어서 이 부문에 대한 진입 규제완화 및 철폐 요구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즉 국내에서의 보험사 설립은 현재 외국 생·손보회사만 가능하지만 선진금융 노하우나 다양한 글로벌 금융상품 등을 갖춘 외국계 은행들의 보험사설립도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이미 85% 개방…나머지 15%에 촉각
“외국계 국내시장 큰 폭 잠식” 우려감
◇“외국계의 시장잠식 가능성 커”= 아직은 어느 부문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급속도로 추가 개방이 이뤄질 경우 미국 금융기관들의 앞선 시스템과 금융서비스와 전면전을 펴다보면 시장 잠식 가능성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만일, 국경간 공급이 허용되면 국내 투자자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미국의 보험, 주식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미국 투자자들도 국내 상품을 가상의 공간에서 직접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독당국 한 관계자는 “국경간 공급은 소비자를 보호하고 감독혼란을 막기 위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이를 허용한 후 간혹 문제가 생길 경우 지점이 국내에 있으면 바로 감독기구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외국에 있기 때문에 권한 밖이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 수석연구원은 “외국 현지에서도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마케팅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국 국내 고객을 뺏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한·미FTA 체결로 그동안 유니버셜뱅킹을 통해 방카슈랑스 경험이 풍부한 유럽계 은행들이 국내 보험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일단 기존에 없던 부분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법과 감독체계가 요구되기 때문에 소비자와 투자자보호라는 큰 명제 아래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이미 파생상품은 대부분 외국계가 개발한 것을 국내 금융사들이 가져 와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국내에서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을 개발할 역량이 되기도 전에 외국계가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을 자주 접하는 국내 대형증권사 한 관계자는 “신금융서비스가 허용되더라도 국내엔 사실 시장이 형성돼있지 않기 때문에 큰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최근 날씨 파생상품이 나오긴 했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고도 전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제조업 등과 달리 금융부문은 개방의 이슈보다는 제도나 규제의 이슈가 될 것”이라고도 풀이했다.
즉 “증권 은행 보험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은 서비스 혹은 상품을 상상해본다면 아직 분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다”며 “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 금융상품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제도 및 법의 변화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 OECD 자유화규약에 따른 자본자유화 수준 평가결과1)>
(단위 : %)
1) on/off 방법에 의한 평가 2) 우리나라 제외 3) 터키, 멕시코,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4) 직접투자, 비거주자의 국내부동산 매각, 거주자의 해외부동산 매각, 자본시장 거래 등 53개 항목
5) 비거주자의 국내부동산 매입, 거주자의 해외부동산 매입, 단기금융시장거래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