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슈와 관련하여 시민단체는 금산분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원론만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러한 주장을 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는 사유재산권의 보장과 경쟁 및 가격기구에 의한 자원배분이다. 특정한 산업에의 진입과 퇴출의 자유는 경쟁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요건이다. 따라서, 특정한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주체를 제한하는 금산분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극히 예외적인 규제이다.
예외적인 규제는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규제에 따른 편익이 비용보다 충분히 크다는 점, 그리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규제를 주장하는 측이 입증해야 한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에 가장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미국에서도 금융과 산업의 분리는 은행업에 대해 적용하는 규제이다. 그래서 영어로 금융과 산업의 분리는 ‘Separation of Banking and Commerce’이다. ‘Separation of Finance and Commerce’란 말은 영어에서 찾을 수 없다.
진입 제한의 비용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소비자의 후생이 감소된다는 점이다. 세계 최강의 금융자본을 보유한 미국에서도 은행과 산업간 분리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금융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산분리 정책으로 인한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산분리와 관련한 최근의 논의는 외환위기 이전의 경제상황과 금융규제환경을 상정하여 금융과 산업간의 결합의 폐단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고 있다.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을 외국자본에 줄줄이 넘겨주는가 하면, 비은행 금융업에까지 금산분리를 적용하자는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외국자본에 은행을 넘겨준 데에 따르는 대가는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두고두고 치르게 될 것이다.
금산법 개정과 관련한 소급 여부 논의와 관련하여, 개정 조항을 소급하여 적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는 소방법을 예로 든다. 화재예방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소방법을 강화했다면 건물주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새로이 강화된 규정을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금산법 개정안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재예방을 위해 강화된 소방법을 새로 짓는 건물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소화기를 층마다 설치하도록 하는 정도의 규정이라면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추구하는 공익이 크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프링클러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스프링클러를 기존의 건물에도 설치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행해져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공사에 들어가는 직접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미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공사로 인해 입는 직간접 피해도 만만치 않다. 그에 따라 새로이 강화된 소방법을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함에 따라 침해되는 사익이 화재방지라는 공익과 비교해 작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미국에서 스프링클러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도입하면서 이러한 점에 대한 논의의 결과 기존의 건물에 대해서는 의무화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만일 강화되는 소방법의 내용이 비상계단을 건물 양끝 실내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규제를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하도록 하면 기존 건물의 내부를 헐어내는 대공사가 있어야 되고 침해되는 사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소방법상 규제를 기존의 건물에도 적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기존의 건물에 적용하게 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사익의 침해와 새로운 규제가 화재예방에 기여함으로써 화재에 따른 손실을 감소시키는 공익 중에서 어느 것이 큰 지에 의해 결정된다. 금산법 관련 조항을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서도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할 이슈이다.
금산법은 금융기관이 타회사 지분을 5%이상 취득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승인을 받도록 한 기준선인 5%는 자의적인 것이다. 4.99%와 5.1%간에 얼마나 지배력에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폐해에 차이가 있는지 어느 누구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5%라는 기준을 둔 것은 어차피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므로 어느 선에선가는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취득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 5%라는 기준을 소급해 적용함으로써 얻는 공익의 크기가 크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삼성생명은 1999년에 금산법의 관련 조항이 신설되기 이전에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9년 당시 8% 수준이었고 현재는 7% 남짓한 수준이다. 7%를 5% 이하로 줄이지 않으면 위협받는 공익이 무엇인지 필자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7%를 5%로 줄이는 과정에서 침해되는 사익은 분명히 떠오른다.
법을 예외 없이 적용함으로써 법치금융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 자체가 공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주장이다. 소급적용을 할 때에는 침해되는 사익과 추구하는 공익간에 비교형량하여 공익이 충분히 큰 경우에만 소급을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리이다. 예외 없이 항상 소급을 하는 것이 법치주의가 아니다.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과 관련해서도 시민단체의 주장은 지나치다. 에버랜드에 대한 삼성계열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95%에 달하며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25% 수준의 지분이 없더라도 지배관계의 본질에는 영향이 없다. 그렇다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처분토록 강제한다고 해서 달성되는 공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처분을 명령하는 경우 비상장주식인 에버랜드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삼성카드는 상당한 매각 손실을 입을 것이다. 추구하는 공익은 불분명하나 침해되는 사익은 분명하다.
금산법의 문제는 이제 조만간 국회에서 결론이 날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 이러한 점이 충분히 감안되어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되기를 고대한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