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공무원들이 무슨 짓을 했기에 민정수석실까지 나서서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당초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때에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조항들이 개정안의 부칙에 슬쩍 들어가서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 올라간 것이 발단이었다.
문제는 추가된 부칙조항 하나하나가 추가되어야 할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이 없는 상태에서 슬그머니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현재 금산법 위반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유일한 재벌인 삼성의 모든 가려움증을 산뜻하게 해소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입법예고 때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고, 그런 내용이 들어가야 할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도 없고, 우연히(?) 현재 유일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국내 최대 재벌의 위법사실을 다 덮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될 법도 하다.
물론 내사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재경부는 이미 입법예고에 나타나 있던 사항을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한 것이라는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사태를 어물쩡 덮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동안 이 법의 개정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필자의 눈에는 이런 공무원들의 얄팍한 재주넘기가 그저 씁쓸할 뿐이다.
민정수석실에서는 이번 내사가 관련 공무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형식적 조사에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진실을 파헤치는 엄정한 조사가 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이 과정에서 공무원으로서의 행위규범을 어긴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단순히 징계에 그치지 말고 공직자윤리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다시는 그런 사람들이 관련기업에서 당당하게 새 둥지를 트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기강을 다잡는 것으로 금산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금산법이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금산법 개정안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국회의원이 법을 위반한 금융기관에 대해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내용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이 삼성에게 적용된다는 데 있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삼성을 빼주기 위해 온갖 편법과 곡학아세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조항의 존재와 삼성의 위법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빠져나가려면 모든 언론과 시민단체의 입을 막고, 모든 화폐금융론 교과서를 다시 쓰고, 모든 국회의원을 잠재워야 한다. 삼성이 혹시라도 이런 미련을 아직도 가지고 있거나, 이 법이 개정된 후 나중에 법원과의 관계를 친밀히 하여 법정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삼성의 불행일 뿐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법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이용하여 다른 산업자본을 지배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은 지금 정확히 국가가 금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을 이용하여 산업자본을 지배하려는 것을 깨끗하게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중 초과보유분과 삼성카드가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중 초과보유분을 다른 곳에 매각해야 한다. 물론 삼성전자와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축소할 생각이 없다면 그룹총수나 특수관계인 혹은 다른 계열사가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이를 매입하면 된다. 그것은 삼성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금융기관 보유주식을 매각하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삼성의 선택일 수 없다. 이제는 삼성이 현실을 직시하고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