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극적인 협상타결을 위한 최소한의 접점은 무엇일까. 그 것은 사측 보다는 약자인 노조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에서 출발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협상 진행 상황을 감안하면 노조는 사무직군제 폐지, 자동호봉승급제 도입, 임금인상 8.6%, 비정규직 고용안정 등을 반듯이 관철해야 하는 최소 항목으로 두고 있다. 5일 오후 2시부터 시내 모처에서 열리고 있는 하영구 행장과 서민호 노조위원장의 마라톤 대표협상에서 이들 현안에 대해 막판 절충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의 다른 핵심 요구사안인 상장폐지 철회, 국부유출 금지, 독립경영 등은 사측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러한 사정은 노조도 잘 알고 있는 만큼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한미은행 노사가 사무직군제도 폐지, 자동호봉승급제 도입, 임금인상, 비정규직 교용안정 등 최대 현안에 대해 타협안을 도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극적 타결이냐, 아니면 경찰병력 투입으로 일단락되는 파국으로 치닫느냐가 판가름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노사 양측은 아직 이들 현안에 대해 상당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사무직군제 폐지의 경우, 사측이 기존의 `수용불가`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나 `5년내 단계적 폐지` 카드를 내놓았다. 그러나 노조는 정규직중 일반직에 비해 임금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무직의 전면 철폐를 고수하고 있다. 한미은행 총 직원 3800명중 800명 가량이 사무직에 속한다. 반면 사측은 일반직과 임금체계가 다른 사무직의 전면 철폐는 임금체계의 조정 등 단시간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통합 과정에서 논의할 과제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노사가 현실적으로 타협안을 도출할 수 있는 사안중 하나가 사무직군제 폐지라는 점에서 이번 파업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노조로서는 이번 파업을 통해 약자인 사무직의 지위 향상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호봉승급제 도입 관철도 노조가 물러설 수 없다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고과에 의해 호봉승급이 이뤄지는 현행 차등호봉제는 항상 과반수가 불이익을 받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고과등급을 승진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S, A를 제외한 B, C, D를 받으면 최소 3개월 이상 호봉승급이 늦어지는 폐해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개개인의 역량이나 기여도에 따라 호봉승급을 달리 취급해주자는 게 제도의 기본 취지이고, 좋은 실적 내면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게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다. 이 것 역시 통합과정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수용불가` 입장에서 물어나지 않고 있다.
노조가 당초 10.7%에서 8.6%로 낮춰 수정 요구한 임금인상도 핵심 쟁점사안이다. 노조 관계자는 "한미은행에 흡수 합병될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임금인상률과 동일한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데, 저기는 되고, 여기는 안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한미은행 직원들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대주주인 씨티그룹이 통합한미은행 출범 이후 2006년까지 씨티은행 서울지점 직원들의 임금을 한미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향후 임금인상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인식도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사측 관계자는 "노조는 8.5% 임금인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호봉을 포함하면 12%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며 "공단협 수준 이하로는 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단협 이후 결정하자는 것"이라며 종전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노조는 이밖에 비정규직 고용안정, 전산센터 유지 및 독립 운영 등도 핵심 사안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과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하 행장과 서 위원장이 마라톤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이들 현안에 대해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회의가 길어지고 있는 점을 미뤄 서로 양보를 통해 뭔가 타협점이 도출되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미은행 파업이 은행 파업 최장기록인 12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고객불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그동안 노조에 대한 압박카드 성격이 다분했던 정부의 공권력 투입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점도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파업이 장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노조가 해결의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고, 사측도 강경입장을 고수하면서 여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서로 양보를 통해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다면 타결국면으로 급전환할 수 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은행 파업사태가 어떻게 해결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극적 타결이냐, 아니면 공권력 투입이냐가 결정되는 시기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데일리 제공)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