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농협개혁의 최대 현안으로 대두됐던 신용·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문제가 1년간 유예된 가운데 타당성 및 세부추진 계획 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수건돌리기 하듯이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 알맹이 빠진 비대위 = 농협중앙회는 지난 3월5일 농협개혁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농산물 유통혁신, 상호금융금리 인하, 급여체계 개선, 사업경합 해소 및 수익전환 등 네 가지 주제를 논의키로 했다. 지난달 모 방송사에서 농협 관련 방송을 내보낸 직후의 일이다.
비대위는 오늘부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며 오는 25일 대의원대회에서 개혁방안을 결의하고 개혁작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비대위에서는 정작 농협개혁의 핵심이라고 얘기하는 신·경분리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안건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의원대회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개혁방안을 도출해낸다는 것. 이같은 이유로 농협 내외부에서는 ‘보여주기식 개혁안’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앙회 노조 관계자는 “중앙회가 농협 개혁의 본질을 회피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 손재범 정책실장은 “농협개혁은 조합의 임금문제 등이 핵심이 아니다”며 “중앙회가 농민들에게 어떻게 실익을 줄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해야 할 때에 비대위는 임시방편적인 대응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 “협동조합의 취지 살려야” = 농민들의 신·경분리에 대한 의지는 단호하다. 사회적 약자들이 경제적 이익 및 권익보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협동조합이 현재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농민들에 대한 지원 및 권익보호는 뒷전인채 돈놀이에만 집착한다는 과격발언도 이어진다.
실제 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농협 신용부문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경제부문은 신용부문에서의 지원금액을 빼면 사실상 매해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농협이 경제사업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신·경분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부문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한 경영인의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신용사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바라보는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사업의 효율성, 투명성 및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관리 측면에서도 분리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농협의 신용부문은 워낙 커 국민은행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의 농협은 관제의 성격이 짙다”며 “하루빨리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앙회 관계자는 “각 사업부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7조원이 넘는 자본금이 필요하며 경제 및 지도사업의 자립방안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공회전만 지속 = 농민단체는 90년대부터 신·경분리를 요구해 왔지만 중앙회에서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손재범 실장은 “자본금 문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차치하고라도 중앙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의 자립방안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제 또 정부는 당초 올 6월 확정키로 했던 신·경분리를 법안 상정 지연, 정부 및 중앙회의 외면, 이해관계 대립 등으로 1년간 유예키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농협은 다음해 6월말까지 세부추진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