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국 무역비중 커 피해 확대
정부 적극 대응책 아쉬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우리나라에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추정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만 끝나면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경제 회생의 계기가 올 것으로 기대하던 당국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 세계 경제 타격 커
당국은 개인위생만 철저히 관리하면 큰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스 공포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단순히 국지적인 보건문제로 간주됐던 사스가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이라크전쟁, 북핵문제 등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던 요소들이 해소되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상황에서 사스는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과 홍콩, 아세안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를 넘는다. 사스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당국의 대응은 아직 보건사회부의 방역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티그룹은 사스로 인한 인명 피해가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당초의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티글로벌마켓은 “주간한국경제” 리포트를 통해 “중국과 홍콩에서 영향을 주고 있는 사스로 인해 한국의 수출은 0.8%포인트, GDP는 0.2%포인트 정도 줄어들 것”이라며 한국의 올해 GDP성장 전망치를 4.3%에서 4.1%로 하향 조정했다.
CGM은 “사스의 부정적 영향으로 이미 중국과 홍콩의 GDP 성장 전망치를 각각 종전 7.6%와 2.8%에서 6.7%와 1.0%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중국 홍콩 결정타 맞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사스 사태로 인해 올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GDP 성장률이 1% 포인트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는 ‘사스와 아시아 경제 전망’보고서에서 사스 파동에 따른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손실을 액수로 환산하면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스 공포가 관광에 미치는 충격은 역내 전반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잠재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 공포와 관련된 소비 지출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사스 피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로 이미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2% 포인트 내린 중국과 홍콩 및 싱가포르를 꼽고 올해 4.4분기까지 사스 위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출하되거나 경유하는 상품의 흐름에 제약이 가해진다면 심각한 불황의 위험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영향을 감안해 피치는 올해 세계 GDP 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추정했다.
UBS워버그도 “사스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중국에서 막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며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부정적인 영향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UBS워버그는 사스의 부정적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 이달 중국 산업생산과 소매매출, 한국의 무역수지 등을 주시하라고 조언했다.
■ 금리인하 이어질 듯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로는 처음으로 사스로 인한 경기위축을 우려해 금리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뉴질랜드의 이같은 조치가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로 크게 파급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전망했다.
리만브라더스의 이코노미스트인 롭 서바라먼은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분위기가 조만간 한국, 대만, 인도네이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이 사스로 인해 크게 둔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이동과 접촉을 꺼리면서 여행, 관광 등의 산업이 바로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은행도 이를 반영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5.5%에서 5.0%로 하향했다.
사스의 피해가 큰 대만과 홍콩 역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홍콩의 경우 최근 사스로 인해 대규모 자금지원안을 발표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더욱 높혀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경우 최근 몇년간 금리를 조정해 실질 금리가 제로수준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스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적지않게 피해를 보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은 없다. 산업자원부는 “사스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지만 막상 기업들은 정보가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꺼린다”고 설명한다.
■ 마케팅 피해 발생 시작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 RA)에 따르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사스로 인한 피해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생산부문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면서 “현재로서는 마케팅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또 “지금은 사람들이 접촉을 안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마케팅에 차질을 빚는 정도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대 중국 수출에도 적지않은 지장을 미칠 것”이라며 “이 경우 경기침체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스가 창궐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와의 교역비중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 대중국 수출은 237억달러, 전체 수출의 14.6%를 기록했다. 미국에 대한 수출비중 20.2%에 이어 단일국가로는 두번째로 높다. 또 홍콩에 대한 수출비중도 6.2%에 이르고 아세안국가 비중은 11.3%에 달했다. 중국과 아세안의 수입비중은 각각 11.4%와 11.0%였다.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0.5%포인트 하락한 7%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사스가 2분기이상 지속되면 성장률이 7%이하로 떨어질것으로 보인다.
사스로 인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경우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관계자는 “중국의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면 해외 상품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성장을 억누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스에 따른 경제적인 피해에 대해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액션이 없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스의 경우 파장이 어떻게 확산될 지를 전혀 알수 없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보다 더 무서울수 있다”며 “수출지원이나 투자활성화를 위한 정책 못지않게 사스에 대한 비상대책(contingency plan)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부 비상대책 없어
심각한 사스 홍역을 앓고 있는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는 우리 수출상품의 4분의 1 이상이 들어가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우리 경제는 이미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한국은행이 주요 투자은행들의 분석을 토대로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이 오로지 사스때문에 0.2∼0.5%p, 홍콩은 0.6%p 이상, 대만·태국·말레이시아 등은 0.2∼0.9%p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투자은행들의 전망치는 사스가 2분기중 진정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실제 성장률 하락폭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는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특히 “중국경제가 투자은행의 예상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는 “중국의 감염자 수 및 피해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더 클 것”이라며 “이는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높여 투자연기 또는 취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S&P는 홍콩 역시 사스 발생으로 2분기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고, BNP파리바페레그린은 사스가 홍콩경제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9%로 하향조정했다.
■ 소비위축 현실화 우려
사스 상륙이 현실화됨에 따라 충격이 가중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크게 위축돼 있는 소비경기가 문제다. 사스 상륙시 민감한 반응을 보일 도소매, 음식숙박서비스, 운수, 교육서비스 등 4개 업종에만 국내 취업자의 39%가 종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아시아 사스 감염국 국민들은 외출과 외식을 자제하고, 극장과 백화점 등 인구밀집 장소를 기피하고 있다면서 관련산업 매출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한 달만에 다시 4.0%로 하향 조정한 ING는 “사스가 아시아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이라크전쟁 보다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고, 홍콩의 경제전문지 파이스턴이코노믹 리뷰(FEER)는 최근호에서 “사스로 인한 한국의 GDP 손실액이 20억 달러에 달해 중국(22억 달러) 다음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 장기화 우려 높아
IMF는 최근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사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북핵 문제와 함께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금융센터가 개최한 `국제금융정책 포럼`에서도 외국계 증권사 및 은행 관계자들은 “사스는 아시아 지역 전체의 문제인 만큼 사스확산에 따른 한국의 피해여부를 유의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디스와 S&P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도 우리 정부에 사스에 관한 문의를 잇따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사스(SARS)는 더 이상 보건당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령처럼 떠돌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사스는 특정 사건이나 지역에 국한된 재난과는 차원이 다르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시장과 경제의 활력이 서서히 말라들어가고 있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사회적 충격뿐 아니라 경제적인 파장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충격에 대한 범 정부적차원의 전략과 대응체계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사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시장과 경제에 미칠 영향은 9.11테러나 이라크전쟁에 못지 않을 것이다. 사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든 홍콩증시는 한달간 6%이상 하락했고, 싱가포르도 4%가량 떨어졌다. 중국의 경우 사스 감염자수를 축소 은폐한 것이 드러나면서 뒤늦게 시장과 경제에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새로운 충격에 대한 우리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기만 하다. 예방책이 없다고 대책마저 세우기 힘들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스가 시장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연결고리를 차단, 악영향을 최소화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국회는 무얼하나’
사스의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훨씬 심각한데도 정부와 국회는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가 사태초기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직접마케팅 외에 사이버 수출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중국 및 홍콩지역에 대한 전시회 참여 등 마케팅 활동의 시행시기를 조정하거나 타 지역으로 전환함으로써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것 정도다.
정부는 최근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종합상사 등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수출보험 인수규모를 작년 41조원에서 올해 50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전후 복구시장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플랜트 수주 등에 대해 중장기 수출금융 지원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이같은 조치가 최근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등으로 종합상사들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출차질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스로 인해 막힌 수출길을 어떻게 뚫을 것인지, 사스로 인해 나라경제의 불안감이 점점 확산되는데 대한 차단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강종철 논설위원 kjc01@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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