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하향전망 잇달아
선제적 금융조치 절실
정치적 접근으로 고리 풀어야
올 1분기 들어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것으로 드러나자 각종 민간 경제 연구소에 이어 한국은행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7%에서 4.1%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국책연구소인 KDI도 역시 당초 5.3%에서 4.2%로 대폭 낮췄다. 한은은 경상수지도 흑자에서 10억 달러 적자로,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9%로 각각 수정했다.
지금까지 민간부문에서 줄기차게 비관적인 논조를 전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자세를 견지해오던 당국도 현재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아직 정부만 더 두고 보자며 기존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아마 이라크전이 일단락된 것에 기대하는 바도 클 것이다.
▣ 성장 잠재력 소진 우려
그러나 이제 이라크전이 미국의 의도대로 수습되고 유가도 안정되고 북핵문제도 더 이상 무리없이 해결되고 사스의 경제적 파장도 중국내에서 그치고 우리나라는 안전지대로 남아 반대급부를 챙긴다고 하더라도 정부 당국이 원하는 만큼의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그동안 당국이 대내외적인 상황 호전을 기대하며 정책의 방향성을 탐색하느라 굳세게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에 우리 경제가 그나마 유지해 오던 성장의 잠재력마저 소진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급기야는 소비는 얼어붙고 물가는 오르는 최악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는 꺾이고 물가가 급상승하면 그게 바로 가장 우려하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정권 교체기요 전쟁이다, 지정학적 불가피성이다 뭐다 하면서 경제 외적인 요인만을 탓하며 귀중한 몇달을 허송세월하고 있는 동안에 정말로 경제의 펀더멘탈이 취약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 경제는 기업 투자와 소비 지속이 관건인데 투자는 재벌들이 국제 경쟁력 저하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적기 투자를 포기한 채 경제 개혁 조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치하고 있는 형편이며 대통령의 인위적인 단기부양정책은 안된다는 말에 따라 정부가 부작용 없는 장기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사이에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나 지갑은 완전히 말라붙고 있다.
▣ 소비 4년 2개월만에 감소
통계청의 3월 소비자전망조사`에 따르면 6개월 전과 비교하여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는 3개월 연속 하락하며 63.9를 기록했다. 2월의 경우 73.5였다. 대내외적인 악재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감이 깊어지며 소비심리가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6개월 전과 현재를 비교하는 평가지수는 통계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6개월 후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기대지수는 26개월만에 최저였다.
소비 심리뿐만 아니라 소비행위 자체도 경기 위축과 대내외적인 불안이 지속되며 4년 2개월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투자도 2개월 연속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그동안 경기종합지수는 선행지수가 지속적인 감소세를 기록했으나 동행지수는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에 대해 아직은 경기가 버텨주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했다.
그러나 결국 버텨주던 경기가 꺾이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적어도 12개월 정도, 길게는 16개월 정도 하향국면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경기, 특히 소비심리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자나 경제전문가들은 경기가 꺾였다는데는 동의하면서도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작년부터 회복세를 타던 경기가 외부요인으로 인해 꺾였다”면서 “현재로서는 회복세가 주춤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경기는 회복국면에서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침체국면에 들어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외변수들이 빨리 정리되고 국제경제가 회복된다면 최근의 경기꺾임 현상은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 사항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소장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 사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2분기 수출전망도 부정적인데다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를 계속할 것이고 내수 위축도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 내수경기 경착륙
현대증권은 “국내경제가 1~2월까지는 연착륙 기조를 유지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2분기중 경기침체 심화가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반기중 경기침체 심화는 재정지출 조기집행 수준에 그치고 있는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세제개편 및 SOC투자 확대 등 재정지출 확대와 콜금리 인하 등 금융완화정책과 같은 적극적인 경기부양대책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결국 초점은 소비위축·경기침체가 악순환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에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투자활성화를 겨냥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3월 소비자물가가 급등세를 보임에 따라 경제운용전략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까지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가보다는 경기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경제의 체온`이라는 물가에서 이상이 발견됨에 따라 경기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어려워졌다.
상당기간 안정세를 보여오던 물가가 최근 들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월대비 1.2% 상승, 30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비나 1~3월의 전년 동기비도 각각 4.5%와 4.1% 상승, 3%대의 정부 물가 목표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물가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3%대에서 안정을 보였기 때문에 큰 변수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에는 주로 경기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고 규제를 완화키로 했다.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안정될 것으로 보였던 물가가 들먹임에 따라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활성화 조치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게 됐다.
현대증권 이상재 팀장은 “정부가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경기부양정책에만 그쳤고 적극적인 부양대책은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된 이후로 미뤄지는 양상이었다”며 “물가 변수가 발생한 이상 적극적인 부양책을 사용할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이제까지 정부는 물가와 경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때 물가를 선택하곤 했다”며 “이는 물가가 안정돼야 경기조정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 일부에서 제기됐던 적자재정 편성이나 금리인하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실기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내수위축과 재고누적 등으로 산업현장의 체감경기가 급속히 하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대외여건이 악화될 경우 기업부실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급랭 막을 묘책 없어
삼성경제연구소는 체감경기 급랭의 원인과 처방’ 보고서에서 “이라크전쟁과 카드채·SK글로벌 문제 등 불투명한 여건으로 인해 향후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내수위축과 교역조건 악화 등으로 체감경기 개선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따라서 “상황이 과도하게 악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경제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면서 “대내외 여건이 나빠지고 있으므로 경제정책은 경기급랭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다투어 나오는 비관적인 논조는 국내경기 하락세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지난해 6.8%에 달했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1%대로의 급락이 불가피하고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우려된다. 성장 동력이 돼야 할 수출도 둔화세로 접어들었다. 혼조세를 보였던 우리나라 경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상반기중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실제 체감경기는 극심한 불황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 불안요인 증폭, 체감경기 악화, 소비·투자 심리 위축, 실물경기 악화 등의 악순환 고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전문가들의 주문은 불안심리 해소, 재정 조기 집행, 투자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정부가 이미 마련한 대책과 별 차이가 없다. 그만큼 난국을 타개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재정 조기 집행을 독려하고 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는 방책일 뿐 적극적 부양책으론 한계가 있다.
한편 데이비드 라이트 전 주한 영국대사는 한국이 최근 들어 재벌정책과 함께 외국투자자들의 신뢰 확보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라이트 전 대사는 “최근 한국 정부는 경제정책을 구상하는데 있어 외국계 기관과 업체들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마찬가지로, 이웃 일본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고려할 때 매우 시사성 있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2001년 침체로부터 겨우 회복세를 보였던 경기가 다시 침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긴급 처방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 FRB도 적극 조치 고려
굿모닝신한증권 김일구 이코노미스트는 “채권시장에서는 물가와 경기의 힘이 금리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환율이 충분히 하락한다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하락한 유가와 함께 금리하락 모멘텀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문제, 사스(SARS), 금융경색, 정부의 재벌정책, 이라크전쟁 등 주요 현안들은 모두 주식시장을 자극함과 동시에 외환시장을 부정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며 “이 같은 요인들이 악화되면 경기전망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져 주가 하락과 금리 하락 요인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올라가면서 물가부담을 가중, 금리상승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동안 외환시장에 일방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환율상승 심리가 완화되고 있어 유가가 종전으로 지속적으로 안정되면 금리운용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의 통안채 발행은 과잉유동성을 흡수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지만, 시중의 단기부동자금이 경기가 좋아진 이후 투기세력으로 변할만큼 급격히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지난해 부동산 가격 급등을 낳은 것도 기존 자금들이 아니라 은행에서 새로 차입한 자금들이 었다”며 “경기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시중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 엇갈린 경제해법 놓고 논란
한국은행과 KDI도 경제 해법을 놓고 현저한 시각차를 드러낸다.
정부 의중을 대변하는 KDI는 현재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추경편성을 통한 재정확대나 법인세감면, 금리인하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한은은 앞으로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KDI는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예상보다 악화되고 있는 경기상황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 현재의 재정정책 기조를 중립 또는 소폭의 확장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재정정책을 중립기조로 전환하려면 국내총생산(GDP)의 0.4%인 2조∼3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재정확대의 구체적 액수까지 제시했다.
KDI는 또 “재정수입은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가돼 온 상태이므로 법인세율 인하 등을 검토해야 한다”며 “법인세율 1%포인트 인하는 연간 세수를 7000∼8000억원 감소시키지만 중기적으로 재정지출 효율화를 통해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식시장 침체와 채권시장 동요 등을 감안할 때 금리인하 여건이 조성돼 있다며 콜금리 인하도 촉구했다.
한은은 부정적인 시각이다. 올 해 세워놓은 재정의 조기집행이나 일부 세제개선을 통한 경기부양은 있을 수 있지만 추경 편성이나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가 현재 바닥인 것은 사실이지만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 경제가 나아져 4% 이상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위적 경기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금리인하 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투자·소비 부양보다는 물가오름세에 탄력을 주거나 부동산투기 등을 부채질해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승 총재는 “금리를 내려 부동산경기를 부추겨 소비를 진작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현재 기업들이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투자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설비투자에 미치는 효과가 의문”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실 박승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다음과 같은 사실과 더불어 생각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기업들은 작년 사상 최고의 경영성과를 냈으나 일부 기업의 실적호전이 전체기업의 평균실적을 좋게 만든 측면이 강한데다 10대기업을 제외한 절대다수 기업의 평균 매출실적은 10대기업 매출의 4.4% 수준이며 순이익은 1.1%에 불과하다”는 한 경제연구소의 지적대로 아직도 우리 경제는 10대 대기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여기에 있는 만큼 해법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수시로 모여 개혁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각종 경제 단체들의 구성원을 투자의 마당으로 이끌어 내야 경기가 돌아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소비까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정통적인 정책 수단으로 이들이 움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은 국가 경제를 볼모로 정부와 반대편에 서서 일전 불사를 외치고 있는 이들을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하면서 어떻게 정치력을 발휘하여 다시 경제 일선으로 끌어 오느냐 하는 것에 이 정부의 역량이 달려 있다고 하겠다.
<강종철 논설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