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은 이 같은 돌출행동을 통해 후손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첫째 교훈은 수위자리를 요구한데서 찾을 수 있다. 수위가 되어 나라가 더 이상 도둑맞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아 오는데 굳이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며 지위와 명성이 필요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대의를 위해 그는 소아(小我)를 버릴 줄 아는 큰 인물이었다.
김구선생은 자신이 양반계급이 아니라 천민 또는 상민이라는 점을 백범이라는 아호를 통해서 보라는 듯이 드러냈다. 백범의 백(白)은 조선시대 이후 천민계급이었던 백정(白丁)을 가리킨 말이며 범(凡)은 필부필녀(匹夫匹女)와 같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고사는 일에만 충실하는 하층민(下層民)을 지칭한 말이다. 이처럼 그는 백정이라는 천한 뜻이 함축된 아호를 쓰면서 사회의 밑바닥 세계로 뛰어 들었다. 양반계급에서 벗어나 종살이 같은 삶을 영위하는 밑바닥 인민들의 편에 항상 서있겠다는 각오를 확고히 했다. 백성들의 민심이 자연히 백범에게로 모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것이 두번째 교훈이다.
小我를 버릴 줄 알아야
그러면서 백범은 한가지 신념을 굳게 지켜나갔다. 나라를 빼앗긴 이후 갈래갈래 흐트러지고 찢어진 국혼(國魂)을 부활시키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이다. 나라와 함께 잃어버린 나라의 혼(魂)을 되찾는데 헌신했다. 큰마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큰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백범이 가진 삶의 가치가 이러했기에 항일독립운동의 본산인 상해 임시정부에 와서 가장 밑바닥인 청사의 수위자리를 달라고 청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도 국혼의 부활 내지는 회복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 경제 외교 등 주요정책들의 진행과정에서 나날이 불안감이 쌓이고 증폭돼 가는 느낌이다. 북한의 핵 문제도 이젠 우리의 능력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외국인들의 투자기피 내지 투자회수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나라걱정이 쌓여 간다. 각자가 살림걱정의 단계를 넘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불안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날로 증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최근엔 온 국민이 도박꾼이 돼 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복권 붐이 온 나라를 덮어 버렸다. 경위야 어떻든 이것도 잘한 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다가 국민들을 한탕주의 열풍 속으로 몰아 넣게 되었는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속히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인사들인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자신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라 국민들의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파악, 대책을 설계해 내고 국혼을 되살려 내면서 잊혀진 애국·애족의 마음을 다시금 도출해 낼 수 있는가의 여부가 핵심일 것이다.
대범하게 이끌어 가길
국민 모두로 하여금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도록 숨겨진 힘을 이끌어 내고 격려하는 용기를 가진 정부가 돼야 한다. 개혁의 성과도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 가장 성스럽고 희망이 함축된 개혁이 일부 집단 또는 세력에 대해 배타적이 되거나 과거에 대한 질책의 수단처럼 인식될 경우 그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찍이 백범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보다 대범하게 이 시대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 강(江)의 하류에 흐르는 물은 조용하고 가파르지 않다. 시내는 실개울보다 하류에 있다. 강은 시내보다 더 하류에 있다. 강이 실개울과 시내를 흐르는 모든 물을 받아들이듯이 수용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강을 흐르는 물은 개천이나 시내보다 깊고 넓으며 그 길이도 길다. 뒤집어 말하자면 상류의 물은 얕고 좁고 짧으나 하류를 흐르는 물은 깊고 넓고 물길이 길다. 또 상류의 물보다 조용하고 품위를 갖고 있다. 상류의 물은 물살도 세고 시끄럽지만 큰 힘은 없다.
깊이 있게, 멀리 크게 보며 대범하게 행동할 때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솟아나는 법이다.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이 순박해지지만 정치가 번잡해지면 민초들은 실망하게 된다고 한다. <주필>
김병규 기자 bk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