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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컬럼] 어려울수록 ‘原論’에 충실해야

김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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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2-09-2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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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가운데 서리케이트라는 네발짐승이 있다. 작은 강아지만한 이 짐승은 항상 쫓기듯 주변을 두루 살피면서 살아간다. 땅속의 벌레 쥐 등 먹이를 찾기 위해 앞발로 땅을 팔 때도 뒷발로 땅을 딛고 수시로 일어서서 주변을 살핀다. 이 때 앞발을 가슴에 붙인 다음 몸을 곧추세우고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은 흡사 재롱을 부리는 강아지 같아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에 놀란 듯 치켜 뜬 눈동자엔 겁먹은 표정이 서려있어 한편으로는 측은한 느낌이 든다.

이 같이 서리케이트가 두발로 서 있는 자세를 글로 표현할 때 흔히 기(企. 꾀할 기, 발돋움할 기)라는 글자를 쓴다. 일을 꾀한다는 뜻을 확대 해석하여 ‘발돋움해서 본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기(企)는 사람 인(人)과 멈출 지(止)가 합쳐진 것으로서 이 때 지(止)자는 발 족(足)의 변형어이다.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발돋움하여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기자(企者)라고 일컫는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표현할 때 쓰는 말로 과자(跨者)가 있다. 과(跨 넘을 과)가 뜻하는 것처럼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지나칠 정도로 보폭(步幅)을 넓혀 성큼성큼 걷는 사람 또는 그런 모습을 말한다.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실력이상으로 안간힘을 쓰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능력은 감안하지 않고 욕심을 채우려고 무조건 덤비고 보는 군상을 가리킬 때 ‘과자의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기자(企者)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끝으로 (마치 발레를 하듯이) 온 몸을 꼿꼿하게 세운 자세로는 오랫동안 서있지 못하며(불립 不立), 과자(跨者)처럼 걸음걸이의 폭을 넓혀 성큼성큼 걷는 자세로는 먼 길을 걸을 수 없다(불행 不行)”고 일찍이 노자는 경고한 바 있다. 기자의 인간들은 대개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과자의 부류들은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뽐내고 과시하면서 공(功)을 독차지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그는 부연하고 있다. 기자불립(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

최근들어 새로운 모습의 기자(企者)와 과자(跨者)들의 행렬이 갑자기 밀어닥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 주변이 혼란스러워졌다. 경제문제만 보아도 펀더멘털은 좋다는데 무엇인가 불안하고 불투명하며 믿음이 가지 않은 점이 많아진 것 같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상승억제 정책으로 민심이 대단히 악화돼 있는 가운데 그 동안 펴온 여러 가지 정책들이 잘 먹혀들지 않아 정부의 신뢰도는 더욱 낮아진 듯하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과거엔 부동산을 규제하면 시중의 과잉유동성 일부가 증권시장으로 옮겨가 증시를 부양하거나 은행으로 유입, 은행저축이 늘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동산 시장에 몰렸던 자금이 마치 정부의 억제책을 비웃듯이 이곳 저곳으로 숨바꼭질을 하듯 옮겨 다니는 양상이다. 증권시세도 오르기는커녕 하락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은행저축은 더욱 줄어 사상 최저수준의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 과제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가는 상황이다.

정책당국간의 업무분담과 한계도 불분명해지지 않았나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금리인상의 경우 그 주체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될 지경에 처한 적도 있다. 금리문제의 최종결정과 책임은 중앙은행에 있음에도 정부관리의 발언에 더 큰 무게가 실리고 시장은 그의 말을 더 믿는 모습이다. 여기에 일부 은행장까지 끼어 들어 중앙은행의 총재와 정책결정 기관의 모습이 우습게 돼 버린 듯한 장면이 있었다.

그밖에도 예를 들자면 무수하다. 개인신용불량자 처리, 공적자금회수, 일부 정책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다른 시각, 2년여전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지원한 4천여 억원의 행방문제 등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어려운 과제가 참으로 많다.

국내문제가 이같이 복잡하고 쉽게 매듭 짖기가 어려울 정도로 뒤엉켜 있다보니 나라밖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과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형국이다. 최근 신의주 개방 문제가 세계적인 새로운 관심사가 됐음에도 국민은 이를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할지 정부당국자의 설명 한마디 듣기조차 힘들다.

월드컵 대회 때 한국 축구팀이 4강 대열에 끼게 된 비결을 묻는 질문에 히딩크 감독은 “‘기본’에 충실하며 연습했다”고 대답했다. 축구에서의 ‘기본’을 경제적 의미로 다시 해석하자면 ‘원론’이란 말이 적합할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원론’에 충실하는 것이 국면을 타개해 가는 ‘정도(正道)’이며 첩경이다. ‘정도’를 외면하고 ‘원론’에서 벗어날 때 기자(企者)처럼 오래 서있지 못하게 되고, 과자(跨者)처럼 가야할 길은 먼데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는 법이다.

<주필>



김병규 기자 bk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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