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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떨고 있니”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2-01-27 20:47

<전 성 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온 나라가 게이트로 떠들썩했던 지난 주말, 조용한 가운데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하나가 활동을 시작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그것이다. 비록 때맞춰(?) 터진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게이트 연루의혹에 출범소식이 희석되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이 위원회는 가장 활동하기 좋은 여건 속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방지해야 할 부패, 특히 고위 공직자의 부패가 저녁 시장바닥에 널려진 썩은 생선처럼 도처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정확히 5년전인 97년 1월에도 지금처럼 부패와 뇌물, 의혹과 부인, 몸통과 깃털이 신문을 도배하고 있었다. 결국 대통령의 아들이 감옥에 가는 것으로 사건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봉합되었지만 그 경제적 파장은 심각했다. 외부 투자자로부터 믿지 못할 나라로 낙인이 찍히면서 “한국을 떠나라. 지금 당장(Get out of Korea. NOW!)”이라는 구호가 떠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이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이 정부가 그동안 입으로 무어라 외쳐왔건 간에 우리는 또 다시 원점에 서게 된 기분이다. 수많은 필부(匹夫)들과 그들이 구축한 역겨운 부패의 일각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는 이제 더 이상 여야도 없고, 적과 동지도 없다고 개탄한다. 존재하는 것이란 부패한 자와 부패하고자 하는 자들이 연출하는 천박한 인생극장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설사 뇌물이 좀 왔다갔다 했기로소니 그게 무엇이 문제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철수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서 영희의 지갑속으로 들어간 것 뿐이므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혹자는 사람은 경제적 동물인데 뇌물을 바치고 얻는 편익이 뇌물의 비용보다 크면 뇌물을 바치는 것이 이윤을 극대화 하는 방법인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제법 합리적인(?)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패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철수는 영희의 지갑속에 돈을 찔러 준 대가로 다른 경제적 이익을 시가 이하의 가격(심지어는 공짜)으로 요구하게 되고, 결국 시장거래는 왜곡된 가격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패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합목적적일 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

부패는 특히 공급이 제한된 재화나 서비스에 기생하기 쉽다. 왜냐 하면 이런 경우 제한된 재화를 수많은 수요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패 사건에 공무원이 약방의 감초처럼 꼭 끼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공무원은 인허가권이라는 서비스의 독점적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패의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부패가 실제로 어떤 모습과 빈도로 나타나는가는 집권자의 책임이다. 경제학에는 이와 관련하여 고속도로 모형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유료 고속도로에 톨게이트를 누가 몇 개나 세우는가를 통해 부패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인 독재자의 경우에는 독점이익을 극대화하는 개수의 톨게이트를 세운다. 물론 그로부터 얻는 통행료 수입은 전부 독재자의 차지다. 반대로 통제력이 약한 어설픈 민주주의 하에서는 공무원들이 너도 나도 자기 집 근처에 톨게이트를 세우고 통행료를 받아 챙긴다. 이 경우에는 독점시보다도 오히려 톨게이트 수가 더 많아질 수도 있고 따라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수나 통행료 수입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개별 공무원들은 개의치 않는다. 사회적 이익보다는 눈앞의 떡고물이 더 탐나기 때문이다. 제대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만 톨게이트는 적정 수가 세워지고 또 그 수입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국고로 귀속되게 된다.

이제 갓 출발한 부패방지위원회가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작이 조촐하듯 정권과 함께 초라하게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성급한 체념과는 달리 비록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그 끝은 창대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을 떠나라는 소리가 국가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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