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 신흥, 부국증권이 추진하던 공동원장개발 작업이 사실상 무산됐다. 공동원장이관 논의에 참여했던 3개사는 초기투자비용이 예상보다 많고 비용분담에서도 이견이 잦아 각각 제 갈 길을 가기로 했다.
신흥증권은 증권전산으로부터 원장이관을 받되 독자개발이 아닌 제3의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으며, 부국증권은 증권전산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기로 했다. 초기 참여대상으로 거론됐던 유화, 리젠트증권도 ‘베이스21’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 증권사의 공동원장개발 논의가 무산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비용 및 주도권 문제였다. 우선 비용부문에서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초기투자 비용이 많아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원장이관을 끝낸 신영증권의 전산시스템이 3개 증권사 업무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 기존 인프라를 대폭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주도권 및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신영증권의 경우 기존 시스템에 대한 기득권을 최대한 주장한 반면 신흥, 부국증권의 경우 대규모 신규투자가 필요한 만큼 동일한 권리를 강조했던 것.
별도 자회사 설립을 통해 공동원장개발을 논의했던 만큼 지분참여에서 시스템 운영 및 사용에 대한 주도권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 신흥, 부국증권에게는 신영증권의 被서비스 증권사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현대투자신탁-키움닷컴증권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공동원장개발에 이어 또한번의 공동투자 논의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는 IT공동투자에 대한 금융권의 척박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증권업계에서는 脫증권전산, 원장이관으로 대표되는 독자시스템 구축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중대형사들이 거의 독자원장이관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중소형사들의 선택이 남아 있다. 증권전산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투자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중소형사들은 공동투자를 비롯해 파워서비스 이용 등 나름대로 대안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영, 신흥, 부국증권의 공동원장개발 논의는 ‘또다른 증권전산’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증권업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별도 자회사를 설립해 3개社를 대상으로 전산서비스를 하게 될 경우 향후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투자를 원하는 IT업체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활발하게 논의됐다.
증권업계의 경우에도 금융환경의 전반적인 대형화, 겸업화와 함께 HTS 거래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전산개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면서 새로운 전산서비스 모델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실제로 HTS의 경우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야 하고 서버 및 네트워크 용량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독자시스템과 증권전산 서비스 이외에 제2의 증권전산 및 대형사를 통한 파워서비스 모델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최근 신영증권이 겟모어증권과 파워서비스 계약을 맺었으며 일부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서비스를 위해 고객 증권사를 물색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이번 공동작업도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논의단계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IT공동투자에 대한 척박한 현실은 비단 증권업계 뿐만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오던 문제. 구조조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걸음이 더욱 바빠진 은행들도 공동투자 논의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그래서 최근 금융감독원이 재해복구시스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공동구축 방안을 제안했지만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독자시스템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뭔가 차별화 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긍정적인 대고객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제집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현실적으로는 경영전략에서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기업이 손발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자연스럽게 비용분담의 갈등이 증폭되게 된다. 조직 내 반대도 장애물이다. 고용 및 역할 변화에 따른 조직원의 거부감이 그것이다.
반면 은행이든 증권이든 외부적인 현실은 급변하고 있다. 대형화에 따른 효율적인 IT투자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적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투자여력이 부족한 중소형사들의 경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전산서비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공동투자 내지는 아웃소싱 개념의 IT서비스가 주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말 필요한 것은 어설픈 독자시스템 보다는 정확한 경영전략에 근거해 전산서비스의 요건을 정의하고 이에 맞는 서비스 모델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춘동 기자 bo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