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라지는 동전에 관한 단상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입력 : 2017-05-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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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어느 정도 나이든 어른이면 동전(銅錢)에 대한 한두 가지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운동회나 소풍가던 날 어머니가 손에 꼬옥 쥐어주던 동전으로 맘껏 군것질을 할 수 있었고, 벼뤄왔던 장남감도 살 수 있어서다. 차마 아까워 쓰지 못했던 동전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온종일 다녔던 길 을 되짚어 찾아 헤매곤 했었다. 그 때의 절망감이란 무엇과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이토록 소중했던 동전이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행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현금 계산 후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는 대신 교통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로 입금할 수 있게 해줘 동전 사용을 없애겠다는 것. 동전 없는 사회를 일컬어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전 단계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이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잘 쓰지도 않는 동전에 제조·유통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새 동전을 찍는 데 해마다 600억 원씩 드니 이 비용만 해도 간단치 않다. 과거 10원짜리 동전 1개를 만드는 데 38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역(逆)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 때문에 한국은행이 골머리를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능과 가치는 상실했지만 동전의 문양은 최초 발행 이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무궁화 문양의 1원짜리, 거북선 문양의 5원짜리와 함께 1966년 처음 발행한 10원짜리 동전도 41년 동안 다보탑 문양 그대로다. 50원짜리의 벼이삭, 100원짜리의 이순신 장군, 500원짜리의 학도 그렇다.

사실 500원짜리가 한때 지폐로 나온 적이 있었다. 1973년 9월1일 처음으로 찍어낸 500원짜리 지폐의 위력은 꽤 셌다. 자장면 두 그릇 값을 지불하고도 잔돈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국보 1호인 숭례문 그림이 들어있는 이 지폐의 당당하던 위상은 올라가는 물가와 반대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2년에는 동전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해마다 늘던 동전 발행량이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화폐의 전자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상거래의 50%는 신용카드로 이뤄졌다. 체크카드까지 포함하면 3분의 2가 전자 거래다. 현금 사용 비중은 26%로 뚝 떨어졌다. 해외여행을 갈 때 달러를 잔뜩 환전하고, 외출할 때 지갑 속 현금을 세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동전의 쓸모도 매우 감소했다. 공중전화와 자판기도 카드나 지폐로 쓰는 세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인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보유율은 90.2%, 96.1%였다고 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급수단은 2015년을 기점으로 신용카드(39.7%)가 현금(36%)을 앞질렀다. 현금을 대체할 전자화폐는 세계적으로 이미 700종 이상 개발됐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건 세계적 추세다. 스웨덴의 경우 현금거래 비중이 20%로 떨어졌다. 현금을 비축하지 않는 은행이 늘면서 금고를 턴 강도가 아무 것도 못 훔치고 잡힌 황당한 일도 있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일정 금액 이상의 물건은 현금으로 살 수 없도록 했다. 덴마크는 올해부터 화폐 생산을 중단했으며, 필요할 때만 다른 나라에 위탁 생산하기로 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모든 금융거래 내역이 서버에 기록되기 때문에 탈세, 뇌물 등 불법거래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동전 없는 사회’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해킹, 금융사기, 사생활 침해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많다고 한다. 유명한 전자화폐 ‘비트코인’은 서버가 털려 수백억 원어치를 도둑맞는 사건을 수차례 겪었다. 카드사용이 미숙하고 카드발급에 제약을 받는 노년층과 경제취약 계층에게는 동전이 여전이 필요하고 소중한 가치저장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 상당수 어르신과 거의 모든 어린이는 자기 카드가 없다. 전자결제에 익숙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신용불량자와 빈곤층도 자신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마련하기 힘들다.

빨간 돼지 저금통과 코인노래방 같은 '동전 산업' 종사자들은 사업 정체성이 퇴색할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하나 넣는다는 가벼운 마음에 손님이 찾는데 동전 없는 사회가 되면 그런 식의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저금통을 다루는 사람들 역시 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동전 없는 사회’가 이런 이들의 삶에 불편을 줘선 안 된다. 변화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부작용이 약자에게 집중되는 정책이라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동전 없는 사회’를 서둘러 확대하거나 시범사업을 의무화하려는 욕심은 당분간 접어야 한다. 경제 빈혈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묘안이 필요한 때이다.

옛말에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한 걸음씩 올라야 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그 자산의 출발은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 모여 이룰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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