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6(WHE 2026)’에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 같이 말했다.
승용 수소전기차 넥쏘의 내수 판매 부진과 충전 인프라 보급 지연 등 시장의 회의론에도 현대차그룹이 이번 엑스포에서 내놓은 카드는 명확했다. 내구성을 개선한 상용 전용 연료전지시스템과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일렉시티 수소전기 저상 광역버스다. 승용차 중심이던 수소 모빌리티의 무게중심을 상용차로 옮기고 수소 생산과 충전 인프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완성차 업계에서 배터리 전기차(BEV) 중심의 전동화 전략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현대차그룹은 수소 사업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정의선닫기
정의선기사 모아보기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핵심 미래 사업으로 육성해 온 수소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차가 1998년 수소연료전지 연구개발에 착수한 이후 약 30년간 축적한 기술력과 상용차 시장에서 확보한 실증 경험, 에너지 사업자로의 확장 전략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상용차에서 찾은 수소의 경쟁력
WHE 2026에 꾸려진 현대차그룹 부스 현장은 거대한 수소 전초기지를 방불케 했다. 전시장 중심부에서는 수소전기 청소트럭에 자동으로 충전 노즐을 연결하는 수소전기차 자동 충전 로봇(ACR-H)의 시연이 펼쳐졌다. 차량의 충전구를 스스로 인식하고 보호캡을 연 뒤 커넥터를 체결하는 모습에 관람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현대차그룹이 수소 사업에서 우선 공략하는 시장은 상용차다. 전기차가 도심형 승용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것과 달리 대형 상용차 시장에서는 배터리 무게와 충전 시간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십 톤의 화물을 싣고 장거리를 운행하는 대형 트럭은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배터리 용량이 커질수록 차량 자체 중량이 증가하고 이는 화물 적재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운송업체 입장에서는 차량의 주행거리뿐 아니라 한 번에 얼마나 많은 화물을 운반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경제성 판단 기준이다.
충전 시간도 변수다. 장시간 운행하는 상용차는 충전을 위해 운행을 중단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동률이 낮아진다. 반면 수소전기차는 통상 5~10분 안팎의 충전으로 운행을 재개할 수 있어 장거리·고중량 운송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 대용량 배터리를 추가로 탑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적재 효율 측면에서 장점이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과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수소전기 저상 광역버스도 함께 전시했다. 차량 공급뿐 아니라 운행 현황과 주요 부품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통합 관제 시스템 ‘블루링크 업타임 케어’도 선보였다. 자동 충전 로봇을 통한 충전 자동화 역시 상용차 시장을 겨냥한 기술이다. 차량과 연료전지뿐 아니라 운행·정비·충전까지 연결해 수소 상용차의 운영 부담을 낮추려는 전략이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에너지 공급자로
현대차그룹 수소 사업은 차량 제조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두 번째로 눈길을 끈 것은 수소 생산 인프라다. 그룹의 수소 사업 브랜드 HTWO를 중심으로 생산부터 운송, 활용까지 연결하는 통합 수소 솔루션을 제시했다.대표적인 기술이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설비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행사에서 기존 수전해 스택 12개를 통합한 5MW급 전해조 스택 모듈(ESM)을 처음 공개했다. 모듈 한 기당 연간 약 700t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으며 여러 모듈을 병렬로 배치하면 수백MW급 수전해 플랜트로 확장할 수 있다.
폐자원을 활용한 수소 생산 모델인 W2H(Waste-to-Hydrogen)도 전시했다. 음식물 쓰레기와 폐플라스틱 등 폐자원에서 수소를 추출해 지역 내에서 활용하는 자원순환형 사업 모델이다. 지역별 재생에너지와 폐자원 확보 여건에 맞춰 수소 생산 방식을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다.
현대차그룹이 수소 생산 기술까지 확보하려는 이유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이 차량 제조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차를 판매하더라도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생산시설과 운송망, 충전 인프라가 없다면 시장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수소 생산부터 차량 공급, 충전과 운영까지 연결하면 완성차 판매를 넘어 인프라와 운영 솔루션을 함께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새만금 AI 밸리 구상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다. 현대차그룹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과 수소를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공장 등 주요 산업 인프라에 활용하는 미래 산업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수소를 자동차의 연료에 한정하지 않고 산업과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선 장기 투자…미래 에너지 주도권 확보
현대차그룹이 수소 사업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정의선 회장의 장기적인 투자 전략도 자리한다. 정의선 회장은 취임 이후 수소를 그룹의 핵심 미래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현대차는 2019년 ‘FCEV 비전 2030’을 통해 2030년 연간 수소전기차 5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수소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부터 생산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다.또한 현대차는 2024년 발표한 중장기 전략 '현대 웨이'를 통해 2024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수소 에너지 기술과 사업 역량 강화에 5조7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수소전기차 개발을 넘어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충전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이다.
생산 인프라 투자도 구체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9300억 원을 투입해 울산에 수소연료전지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은 연간 3만기의 연료전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된다. 차세대 수소연료전지뿐 아니라 국내 첫 PEM 수전해 설비 생산 거점 역할도 맡는다. 수전해는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기술이다.
새만금에서도 수소 생산 기반을 마련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2월 새만금에 AI·로보틱스·수소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혁신 거점을 조성하기 위해 총 9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1조원은 200MW급 수전해 플랜트 구축에 투입된다. 태양광 발전 인프라와 연계해 청정수소를 생산하고 수소 충전과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그룹은 국내 수전해 설비 용량을 총 1GW까지 확대하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 수소 사업은 전동화 전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라는 의미도 있다. 글로벌 친환경 정책과 전기차 수요 변화에 따라 시장의 성장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수소전기차를 함께 개발하며 동력원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정 기술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보다 각 동력원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접근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 수소 사업 목적지는 단순히 '수소차를 잘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다”며 “미래차 시장 주도권을 배터리 업체나 전력 인프라 기업에 빼앗기지 않고, 생산-운송-활용 전 단계를 아우르는 ‘에너지 공급자’로 연착륙하겠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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