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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술만으론 투자 못받는다…스타트업 운명 가르는 ‘창업자 인맥’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10-28 17:15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정책연구보고서
서울대·KAIST 등 4개大 학연 네트워크 45%
삼성전자 출신 경력 연결 비중 55.4% 차지
자금투입서 투자자 연결로 정부지원 키워야
AI 넘어 로봇·우주·소부장 벤처스튜디오 필요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기술력이 뛰어나도 투자자를 만나지 못하면 성장 기회를 잡기 어렵다. 반대로 영향력 있는 인맥을 보유한 창업자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돼 주목을 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최근 내놓은 ‘창업자의 네트워크가 투자 유치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과제’ 보고서가 분석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국내 딥테크 기업 2734곳의 창업자 학력·경력 정보와 투자·재무 자료를 연계해 네트워크가 투자 유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연구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창업자의 학력·경력 네트워크가 촘촘하거나 영향력 있는 인물과 연결돼 있을수록 투자 유치 금액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허와 기업 업력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한 뒤에도 이 같은 연관성이 확인됐다.

창업자의 학력과 경력은 단순한 이력서가 아니다. 투자자에게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가늠하게 하는 신호이자, 투자 기회를 연결하는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통로가 소수 대학과 대기업 출신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창업자라도 투자자와 연결될 기회가 부족하면 성장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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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보다 중요한 관계 연결망 구조

한국의 딥테크 투자 시장은 기술만으로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보고서는 창업자의 역량 못지않게 누구와 연결돼 있는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자의 학력 네트워크는 서울대·연세대·KAIST·고려대 등 상위 4개 대학이 전체 학력 네트워크의 약 45%를 차지한다. 경력 네트워크에서는 삼성전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상위 10개 경력기관을 중심으로 분석한 창업자 연결망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5.4%에 달했다. 이는 특정 대학이나 기업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그 배경을 통해 누구와 연결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보고서는 네트워크를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돼 있는지, 서로 다른 집단을 이어주는 위치에 있는지,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연결돼 있는지가 그것이다.

분석한 결과, 학력 네트워크의 연결 중심성과 매개 중심성, 고유벡터 중심성은 투자 유치 금액과 유의미한 양의 관계를 나타냈다. 경력 네트워크에서도 연결 중심성과 고유벡터 중심성이 투자 유치와 관련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많거나, 서로 다른 집단을 연결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가까운 창업자가 투자 유치에서 유리한 경향을 보였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인맥이 투자의 유일한 결정 요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네트워크와 투자 유치 사이의 통계적 관계가 확인된 것이고, 인맥만으로 투자 성과가 결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네트워크도 실제 교류 관계를 직접 관찰한 게 아니라 학력·경력의 공통 배경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을 나타내는 특허와 업력 등을 고려한 뒤에도 네트워크의 영향이 확인됐다는 점은 주목된다. 투자자는 기술 자체 뿐 아니라 창업자가 가진 정보와 경험, 사업 파트너를 확보할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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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창업자의 인맥을 보는 까닭

딥테크는 기술의 사업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큰 자본이 필요하다. 바이오 기업은 임상과 인허가를 거쳐야 하고, 로봇이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실제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받아야 한다.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당장 매출이나 수익성으로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는 정보 비대칭에 빠진다. 외부에서 기술의 완성도와 사업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창업자의 이력과 평판, 기존 관계망이 판단의 참고자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명 대학이나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은 일정 수준의 역량을 보여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기존 동료와 업계 전문가, 잠재 고객을 통해 얻는 정보는 사업화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창업자가 투자자나 대기업 담당자에게 접근할 통로를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도 사업 추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인 동시에 편향을 키울 수 도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익숙한 대학과 기업 출신 창업자를 우선적으로 만나면 다른 배경을 가진 창업자는 기술 검증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진다.

인맥은 투자자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투자 기회를 특정 집단에 집중시키는 요인도 된다. 현실적으로 인맥의 영향을 없애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스타트업 창업지원 정책의 목표는 창업자의 인맥이 부족해도 기술과 사업 역량을 입증할 기회를 넓혀주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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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바이오에 쏠린 투자…로봇·미래 모빌리티로 확대해야

투자금의 분야별 편중이 뚜렷하다는 것도 우려가 되는 지점이다. 연구원이 분석한 기업 가운데 빅데이터·인공지능(AI) 분야가 41.4%로 가장 많았다. 바이오·헬스가 22.8%로 뒤를 이었고, 로봇은 2.8%, 미래 모빌리티는 2.6%에 불과했다.

투자금 상위 10개 투자사의 포트폴리오에서도 빅데이터·AI와 바이오·헬스의 비중이 컸다. 빅데이터·AI는 투자금액의 38.95%, 투자 건수의 50.46%를 차지했다. 바이오·헬스는 투자금액의 30.85%, 투자 건수의 22.50%에 달했다. 두 분야가 투자금액의 약 70%를 차지한 셈이다. 투자자의 정보와 네트워크가 소수 분야에 집중되면 다른 기술 분야는 사업성을 입증할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분야별로 필요한 연결망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AI 기업에는 글로벌 고객과 데이터, 기업 간 거래(B2B) 수요가 중요하다. 바이오 기업은 병원·임상시험수탁기관(CRO)·글로벌 제약사와의 연결이 사업화에 영향을 준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대기업의 실증과 양산 검증이 필요하고, 로봇·모빌리티 기업에는 규제 실증과 현장 테스트 공간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모든 스타트업에 같은 방식으로 투자자를 소개하는 정책은 한계가 적잖다. 산업별 사업화 과정을 이해하고 실제 수요처와 연결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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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테라퓨틱·모라이가 보여준 네트워크의 두 얼굴

보고서는 오름테라퓨틱과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기술 기업 모라이의 사례를 통해 네트워크의 두 얼굴을 진단했다.

오름테라퓨틱은 창업자의 학력·경력에서 형성된 연결망을 바탕으로 학계와 산업계, 투자자 네트워크를 활용한 경우다. 글로벌 제약산업 경험과 업계 교류 활동은 이 회사의 사업 기회를 넓히는 기반이 됐다.

모라이는 KAIST 동문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기술을 중심으로 주요 고객사와 투자 관계를 형성했다. 팁스(TIPS) 등 지원 프로그램도 성장 과정에서 잘 활용했다.

두 회사는 네트워크가 단순한 친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을 검증할 파트너를 만나고,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과정에서 네트워크가 실질적인 사업 자산이 된 것이다.

물론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주어진 조건만이 아니다. 기술 검증과 고객 확보, 산업 교류를 통해 새롭게 형성할 수 있다. 정부 지원을 창업자 개인의 인맥보다 연결관계를 체계적으로 만들어주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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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창업자 부족…연결망 확대보다 창업 진입부터

보고서는 여성 창업자의 참여가 적다는 점도 짚었다. 분석 대상 창업자 가운데 여성은 40명으로 9.59%였다. 전체 연결에서 여성 창업자 비중은 약 8.9%로 낮았지만 1인당 평균 연결 수는 남성 창업자의 약 90% 수준이었다. 이는 여성 창업자 네트워크가 남성보다 약한 게 아니라 딥테크 분야에 진입한 여성 창업자가 적다는 것을 드러낸다.

따라서 투자자 연결망 확대보다 여성 이공계 대학원생과 연구자가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교육·기술 검증·창업을 잇는 경로를 마련하고 여성 창업자 대상 투자설명회와 투자자 매칭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창업지원사업을 민간투자 연결통로로

보고서가 제안하는 핵심적 정책 방향은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을 민간 투자와 연결하는 통로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DIPS), 팁스, 대학 창업지원 프로그램, 창조경제 혁신센터 등에서 발굴한 기업 정보를 연계해 투자자가 기술과 사업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가칭 ‘딥테크 커넥트’ 플랫폼 구축을 제시했다.

기업별 기술 검증 결과와 특허, 매출, 기술실증(PoC) 실적, 정부 지원 이력 등을 표준화해 제공하면 투자자는 기업을 비교하고 필요한 기업에 연락할 수 있다. 정기적인 온라인 투자설명회와 지역 창업기업을 수도권 투자자에게 연결하는 전담 인력도 구성하는 게 좋다는 진단이다.

창업지원기관의 평가 기준 개편도 시급하다. 지원기업 수와 사업비 집행 실적 뿐 아니라 신규 투자자 연결, 대기업과의 실증 기회, 후속 투자 유치 성과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말고, 기업이 공개 범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재무 정보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구원 측은 플랫폼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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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경력 대신 기술로 평가받도록 해야

연구원은 공공 창업지원 사업의 선발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초기 심사에서 출신 대학이나 이전 직장 정보의 영향력을 줄이고, 문제 정의와 기술 차별성, 실행 계획, 시제품과 데이터 등 실질적인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안이다.

기술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고, 기술신용평가(TCB)나 공공 연구기관의 검증 결과를 활용하면 창업자의 배경과 별개로 기술을 평가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민간 투자자에게 학력과 경력을 보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 부문이 기술의 신뢰도를 검증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민간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는 대체 신호를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로봇·우주·소재·부품·장비처럼 투자자와 고객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에서는 특히 이 같은 공적 검증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벤처스튜디오로 기술을 기업으로 키워야

보고서는 벤처스튜디오 도입도 제안했다. 벤처스튜디오는 대학·공공연구기관· 대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팀을 구성하고, 새로운 기업을 직접 설립해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기술만 있다고 기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동창업자와 경영진을 찾고, 지식재산권과 법률·재무 문제를 해결하며, 초기 자본과 후속 투자까지 확보해야 한다. 벤처스튜디오는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틀이다.

미국의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은 기술을 토대로 기업을 설립하고 성장시키는 모델의 사례다. 보고서는 이 회사가 100개 이상의 기업을 설립하고 25억 달러를 투입했고 후속 자금 190억달러를 유치한 사례를 소개했다. 모더나도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한국에서 벤처스튜디오를 활성화하려면 창업기획자 제도와의 연계, 전용 모태펀드 계정, 공동창업자의 지분과 운영 관련 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게 연구원 주장이다. 이해상충과 투자자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 로봇·우주·소재·부품·장비 등 민간 투자만으로 초기 사업화가 쉽지 않은 분야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검토할만하다.

인맥 없애기보다 기회 문을 넓혀야

이번 연구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기술력이 중요한 딥테크 투자에서 기술력을 투자자에게 알리고 사업화 기회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력·경력 네트워크가 투자 유치와 관련돼 있다는 분석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 당국은 창업자의 배경이 투자 기회를 좌우하는 비중을 줄이고, 기술을 검증 받고 고객과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 지원은 자금과 교육을 제공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민간 투자와 시장 진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창업자가 인맥이 없다는 이유로 기회를 놓치면 기술기업의 경쟁 성과는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 생태계의 경쟁력은 이미 연결된 쪽에 얼마나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가 보다 가능성 높은 기술을 가진 기업에게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에 달렸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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