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사진=롯데재단
지난 16일 서울 중구 롯데재단 사무실에서 장혜선 이사장을 만났다. 장 이사장은 2023년 롯데삼동복지재단과 롯데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 두 재단을 이끌고 있다. 약 2년여 시간 그는 기존 사업에 그치지 않고 외조부인 롯데 창업주 신격호닫기

“창업주이신 외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 점차 희석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걸 다시 바로잡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저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평범한 재단이 아닌 마음과 물질이 함께 전해지는 따뜻함과 진정성이 있는 재단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수혜자들이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왔고 현재도 하고 있죠.”
“저는 행사를 하고 끝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상이나 자료 등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어떤 수혜자들이 왔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그 사업은 어떤 담당자가 했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사실 홍보 대신 사업에 역량을 더 집중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알려야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재단의 좋은 소식을 알리면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란 기대감도 있었고요.”
장 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부족함 없는 생활을 누려왔지만 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최근에는 뉴스와 유튜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그의 오랜 관심은 지금의 재단 사업을 더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가 현장에 직접 가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진짜 문제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지원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진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니까요. 최근에는 가정 밖 청소년이나 위기 임산부 긴급 지원, 아동청소년 법률 지원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어요. 우리가 몰랐던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아나요? 그래서 신규 사업을 기획했고,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했어요. 또 더 큰 책임감을 갖기 위해 제 이름을 걸고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됐고요.”
그의 말대로 최근 롯데재단은 ‘장혜선 가정 밖 청소년 장학금’과 ‘장혜선 위기 임산부 긴급지원 사업’ 그리고 ‘채무상속 아동청소년 법률지원’ 등에 나섰다. 모두 재단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사업이다.
‘가정 밖 청소년’은 가정 내 갈등과 학대, 폭력, 방임, 가정해체, 가출 등의 이유로 보호자로부터 이탈돼 사회적 보호 및 지원이 필요한 9세 이상 24세 이하 청소년을 뜻한다. 롯데재단은 청소년 쉼터 또는 청소년자립지원관에 거주하는 13세~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
‘위기 임산부’는 임신 중인 여성 또는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 중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을 말한다. 위기 임산부와 가정의 양육 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체계가 필요한 상황에 롯데장학재단은 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전국의 위기 임산부를 대상으로 ▲의료비 ▲주거비 ▲생계비 ▲양육비 등 상황에 따른 맞춤 지원을 진행 중이다.
또 채무상속 아동·청소년 무료법률구조사업은 부모의 사망 또는 부재를 겪은 아동·청소년들이 상속 포기 및 한정승인 등의 법적 절차를 인지하지 못해 빚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마련했다. 약 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중위소득 125% 이하에 해당하는 24세 이하 채무상속 위기 아동·청소년이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부터 무료 법률구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원대상 사건에는 상속 포기, 한정승인 등 상속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의 경우 미성년후견인의 선임 사건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장 이사장은 단편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가진 이들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재단이 지원하는 청소년들이 향후 재단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뷰 내내 형식적인 기부나 사업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지원한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재단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야 해요. 사업은 다른 곳에 맡기면서 진행하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사회적 약자들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싶어요. 제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이 분들이 직접 어떤 점이 힘든지를 말씀해주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항상 그들 뒤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어요.”
“한 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제적 환경이 된다면 도울 수 있잖아요.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저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외조부 신격호 창업주의 이름을 건 사업들을 통해 그의 정신과 이념이 널리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내건 재단이기 때문에 수혜자분들께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는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업에 할아버지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과 뜻을 할아버지의 손녀로서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에 그는 신격호 창업주의 ‘현장경영’ 정신을 이어 받아 앞으로도 재단의 지원 사업들을 적극 펼쳐나가겠다고 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 곁에 함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늘 강조하셨던, ‘현장경영’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어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그분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롯데재단 행사에는 장 이사장의 딸 헤븐 양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 이사장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교육은 몰라도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건 항상 강조해왔는데 그런 면에서 행사에 참석하는 거예요. 특히 딸이 엔터테이너적인 능력이 있어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어요.”
장 이사장은 2년 여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만큼 재단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자신의 건강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저와 재단의 비전은 도움을 받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이어져 서로가 서로를 돕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내가 혼자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이상은 장학생이나 수혜자들을 만나는데 그렇게 보며 1년에 몇천 명을 직접 마주하고 나눔의 가치를 전하는 거잖아요. 그렇기에 이런 소중한 만남 하나하나가 쌓여 큰 울림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이런 노력이 잘 전달돼 훗날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선순환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슬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seulg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