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한국은행에 금리인하 의지가 없지만,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전보다 한층 도비시한 스탠스로 전환하고 있다.
ECB는 금융시장의 적지 않는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새로운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예상보다 더 도비시해졌다.
ECB는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하고 올해 여름까지 현재의 금리 수준을 이어가겠다던 가이던스를 '연말까지 유지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TLTRO는 만기 2년으로 9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1%로 대폭 낮췄다. 내년은 1.7%에서 1.6%로 하향 조정했으며 2020년 전망치는 기존 1.5%를 유지했다.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1.6%에서 1.2%로, 2020년은 1.7%에서 1.5%로 각각 낮췄다. 2021년도는 1.8%에서 1.6%로 하향했다.
최근 유로존 경제지표가 악화를 지속한 뒤 ECB가 보다 완화된 입장으로 선회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가운데 유럽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적 부양에 포커스를 둔 것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경제지표를 볼 때 상당한 통화정책 부양이 여전히 필요하다"며 "필요시 모든 정책을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 유로존 성장전망 리스크가 하락 쪽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ECB가 예상보다 더 도비시하게 나오면서 유럽 국채금리들은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콤 CHECK(3931)를 보면 독일 국채10년물 금리는 6.11bp 급락한 0.0634%로 내려갔다. 정책 기대감에 이틀간 금리가 10bp 이상 빠진 것이다.
분트채 0.06%대는 2016년 10월 25일(0.0279%) 이후 가장 낮다. 유로존 경기 악화와 통화정책 기대감에 금리가 2년 4개월 남짓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금리도 크게 떨어졌다.
이탈리아 금리는 9.15bp 급락한 3.1006%, 영국 길트채 수익률은 5.42bp 빠진 1.1700%로 내려갔다. 프랑스 금리는 8.9.bp 떨어진 0.4214%, 스페인 금리는 6.07bp 내린 1.0529%로 하락했다.
ECB 재료로 유럽 내 안전자산선호가 한층 탄력을 받자 미국채 금리도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채 금리는 4일 연속으로 떨어졌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4.95bp 떨어진 2.6402%, 국채30년물은 4.75bp 내린 3.0254%를 나타냈다. 국채2년물은 5.3bp 하락한 2.4672%, 국채5년물은 5.55bp 빠진 2.4453%를 기록했다.
유럽이 완화적 정책 강화에 무게를 둔 가운데 미국 연준 관계자들은 최근에도 계속 도비시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미국 경제 전망이 약해진 만큼 금리 인상 경로도 낮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린스턴대학 연설에서 "경기 하방 위험이 상방 위험보다 더 크다"면서 "생산 및 고용 관련 기본 전망이 낮춰지면서 금리 경로가 하향돼야 한다. 이를 통해 경기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위험이 상쇄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연준이 경제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할 때"라며 "연말에 어떤 움직임이 적절한지를 두고 예단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글로벌 안전자산선호 무드 속에 뉴욕 주가는 하락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00.23포인트(0.78%) 낮아진 2만5473.23에 거래를 끝냈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22.52포인트(0.81%) 하락한 2748.93, 나스닥종합지수는 84.46포인트(1.13%) 내린 7421.46을 기록했다.
ECB가 예상보다 강도 높은 완화적 스탠스로 전환하면서 유로화 가치는 급락했다. 유로/달러는 1.09% 하락한 1.1186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달러인덱스는 0.84% 상승한 97.69로 뛰었다.
국내 채권시장에선 전일 ECB 회의를 앞두고 외국인의 현물 매수세가 두드러져 주목을 받았다.
CHECK(3275)를 보면 외국인은 국채를 6700억원, 통안채를 2780억원 순매수(순투자)했다. 내년 6월만기인 국고17-2호를 3569억원, 21년 6월 만기인 18-3호를 820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국채 2~5년 내외 구간 매수에 무게를 뒀다.
국내 채권시장에선 금리인하 의지가 없는 한은 스탠스나 재정증권 발행 확대 등으로 단기구간이 막혔지만, 대외적으로는 최근 안전선호가 다시 강화됐다.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탄력도 꺾인 상태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