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출입은행 전경. 출처= 수출입은행
하지만 수출입은행이 수 년 간 자금공급 확대 끝에 올해 반기 기준 사상 첫 적자까지 낸 만큼 대출을 내준 기업들에 대한 여신심사 강화 목소리가 높다. 중복 지원을 포함한 정책금융기관 간 기능 재정립도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수출입은행의 대출(투자포함)과 보증을 합친 자금공급 실적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이어왔다. 20일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1976년 설립된 수출입은행이 첫 해 시장에 공급한 자금액은 500억원. 이후 2007년에 공급액은 40조원 수준으로 뛰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급격히 증가하더니 지난해 결산 기준으로 81조9000억원의 공급액이 지원됐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은 올해 수출입은행 대출과 보증 합친 여신 지원 계획규모도 75조원 수준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수출입은행 부실 대출이 자금공급 확대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여신 지원액은 50조원대를 돌파했다. 경제위기에 따라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 정책금융기관 재편 움직임 속에 경쟁적인 요소도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후 2010~2011년엔 자금 공급액이 60조원을 넘어섰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70조원대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커진 ‘몸집’에 비해 조선·해운 기업 여신심사 측면에서 한계가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15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평가’에 따르면,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을 높이면서 기업들은 수주량 확보를 위해 저가수주, 불공정 건조계약, 낮은 선수금 비중과 높은 잔금 지급 형태의 대금결제 방식을 택했고 리스크는 수출입은행같은 정책금융기관이 떠안게 됐다.
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고유 업무인 중장기 해외투자나 자원개발에 집중하지 못했고, 급증하는 자금 공급을 감당할 직원 여력이나 리스크 관리 능력에서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조원 규모의 자본금 중 정부가 가진 몫이 70%에 달하는 수출입은행의 자본 건전성 악화는 국민 몫으로 돌아가는 만큼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상반기 9379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1976년 출범 이후 반기 기준 적자를 낸 건 40년 만에 처음이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의 리스크 관리체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수출입은행이 전문성과 독립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지난 9월 추가경정 예산을 통해 수출입은행에 9350억원을 출자했다.
수출입은행은 대출이 나간 산업·기업 심사 능력을 높여 자본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일정 수준(10.5%)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여신심사 강화 요구 속에 지난달 말에는 조직개편과 예산 삭감 등이 포함된 수출입은행 혁신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남주하 수출입은행 경영혁신위원장(서강대 교수)은 “수출입은행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금융 역할에 치중하다 보니 자금공급을 해마다 확대하면서도 자본건전성 확보와 리스크관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15일엔 행원들에게 인건비 예산 부족에 따른 이해를 구하는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시간 외 수당 등을 지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연차를 가급적 많이 쓰고 불필요한 야근은 줄여 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정부와 총인건비 한도 관련해 조율중인 가운데 대비 차원에서 사전적으로 연차 휴가 사용, 시간 외 수당 지급보류 등을 직원들에게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국책은행으로서 수출입은행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적 수출신용기관(ECA)이 대출과 보증을 맡는 수출입은행, 보험을 맡는 한국무역보험공사로 분리돼 있는 상황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겸 한국금융학회 회장은 “수출입은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우선돼야 선후 관계가 맞다”며 “정책금융기관 간 중복 기능이 불투명성을 높이고 있는 만큼 수출입은행을 포함해 한국무역보험공사, KDB산업은행 같은 국책 금융기관을 어떻게 재조합할 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