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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易地思之)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13-11-13 21:34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손정국 센터장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易地思之)
삼각김밥 고르기도 어려운데 금융상품을 제대로 알고 고를 수 있을까

금융 소비자 보호는 모든 영역에서 소비자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해야

편의점의 인기 상품 중에 “삼각김밥”이 있습니다. 김밥은 보통 둥근 원통형이라서 “삼각”이란 표현이 의아할 수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김에 싸인 삼각형 모양의 주먹밥입니다. 그렇다고 옛날 주먹밥처럼 맨 밥에 소금으로 간을 한 밍밍한 주먹밥이 아니고 소고기나 참치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함께 넣어서 맛이 괜찮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려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삼각김밥은 일본에서 1980년대 초에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약 10년 후인 1991년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2000년대 들어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매출이 늘어나 이제는 편의점하면 떠오르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편의점에서 가장 매출액이 높은 상품은 담배고 2위가 삼각김밥이랍니다. 최근에는 한 끼를 때우는 정도가 아니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도록 크기가 커진 제품들이 등장해서 새로운 인기몰이를 한답니다. 다만, 국내 모 방송국의 방송에서 일본의 식품개발 전문가가 일본 편의점들이 원가를 맞추려고 2~3년 묵은 쌀에 찰기와 윤기를 더하기 위해 10여 가지의 첨가제를 섞어 삼각김밥을 만드는데, 우리나라 편의점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하였다니 너무 자주 먹는 것은 피해야겠지요.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4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12개 삼각김밥에 대해 시험을 실시하고 결과를 지난 9월 말에 발표했습니다. “시험결과표”, “구매가이드”, “제품별 특징” 등 첨부자료가 세 개나 되는 충실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첨부자료 세 개 중에서 어느 것에 가장 관심이 가시나요? 편의점 사업을 준비 중이거나 영양학에 관심이 있거나 편의점 음식개발에 관여하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그래서 12개 중에 뭐가 제일 좋다는 거야” 아닐까요? 그렇다면 가장 먼저 “시험결과표”를 열어보지요.

파일이 열리면 12개 제품에 대한 개별 정보들이 나옵니다. 먼저, 12개의 구입가격은 모두 800원으로 동일하고 중량은 105g에서 115g 사이라서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안전성 항목은 표백성분, 위생시험, 보존료 등 세 가지인데 표백성분은 모두 불검출, 위생시험은 모두 기준 적합이라서 도움이 되지 않고 보존료는 다섯 개 제품에서 소르빈산이 검출되었답니다. 소르빈산이 뭔지도 모르겠고 이 정도 검출되면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양성분 항목은 열량,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나트륨 등 여섯 가지인데 수치들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역시 비전문가의 눈에는 그게 그거 같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딱 좋은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전주 비빔류, 참치 마요네즈류, 소고기 고추장류로 분류되어 있어서 당장 무엇이 먹고 싶은지는 생각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무엇을 먹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품별 특징”을 열어보니 12개 제품들의 사진과 특징들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들이 대개 시험결과표 내용과 중복되어 있어서 역시 무엇을 먹을까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매가이드”를 열어봅니다.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조일자,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구입 후 반드시 냉장상태로 보관한다. 둘째, 삼각김밥과 함께 다른 음식을 섭취할 때는 전체 영양성분을 고려한다. 이 두 가지는 당연한 얘기라서 무시합니다. 셋째,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나 신호등 표시 등을 확인한다. 제품별 특징을 다시 보니까 네 곳 중 세 곳만 HACCP 지정업체로 되어 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넷째, 주원닫기주원기사 모아보기료의 표시 정보를 확인한다. 제품별 특징을 다시 보니 네 곳 중 한 곳이 김의 원산지 표시가 없답니다.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HACCP 지정업체면서 원산지 표시가 있는 두 곳에서 만든 여섯 가지 삼각김밥 중에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까요? 아니면 김의 원산지 표시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세 곳에서 만든 아홉 가지 삼각김밥 중에 골라야 할까요? 어느 쪽이든 심리학에서 말하는 주먹구구 선택, 즉 휴리스틱스를 이용한 선택입니다.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겠는 정보는 슬쩍 넘어가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좀 알 것 같은 한두 가지 정보만을 가지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삼각김밥을 선택할 때 정말 합리적인 결정은 각자의 현재 몸 상태를 기준으로, 영양성분에 근거한 선택이겠지요. 다만, 일반 사람들이 그런 내용들을 잘 알려면 시간과 노력이 꽤나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정보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제공하는 상품 비교정보는 매우 훌륭하며, 충분한 의미가 있고 계속 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런 정보가 일반인에게 주는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듀크대 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는 그의 저서 「경제심리학」에서 대부분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종교, 성격, 키, 체중, 체격, 눈동자 색, 머리카락 색, 교육수준, 직업 등 정량적인 정보만을 가지고는 원하는 상대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단지 컴퓨터를 활용한 검색에 적합하기 때문에 제공한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달리 경험적 특성 정보를 제공하는 일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들의 이용자들은 검색 기능이 까다롭고,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고, 직관적이지 못하고, 그리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등 그 사이트들을 전반적으로 좋지 않게 평가한다고 합니다. 결국 비교정보의 한계와 비교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한계가 함께 작용하게 된다는 의미지요.

삼각김밥 고르는 것도 이리 어려운데, 하물며 금융소비자들이 종류도 많고 내용도 어려운 금융상품, 특히 투자 상품을 고르기는 얼마나 어려울까요? 삼각김밥 실험 결과에 제시된 수치들이 영양학 전문가에게는 상식이지만 대부분에게는 평소에 업무로 처리하는 익숙한 지식이 아니듯이 금융지식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대 그리스어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대다수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의 본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전문가들처럼 금융지식의 함양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을 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위험”이나 “투자비적격”이란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하물며 투자 상품은 미래를 고려해야 하기에 금융지식이 상식인 이들조차도 선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투자비적격”이지만 재계 38위 그룹이니 안심하라는 판매직원의 말을 믿은 금융소비자는 정말 바보일까요?

진정으로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려면 대다수 금융소비자들과 금융전문가들 간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인정하고, 금융 감독, 금융교육 등 금융의 모든 세부 영역에서 금융전문가의 입장이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속히 제정되어 금융소비자 각각에 적합한 자문을 제공할 금융상품자문업자 제도가 도입되고, 영국처럼 금융 감독에 행동경제학의 적용을 심도 깊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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