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선 2009년 10월 출범시켰던 정책금융공사를 산업은행에 재통합 하고 산업은행 민영화를 사실상 중단하는 대신 대내 정책금융의 구심 노릇을 하도록 하는 재편 계획이 확정됐다. DBJ 역시 민영화하기로 했다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위기대응에 긴급 투입됐다는 점에서 정책금융기구의 가치를 재확인해 준 사례로도 꼽힌다.
◇ 2015~17년에서 20~22년으로 민영화 거듭 연기
1950년 설립했던 옛 일본개발은행(JDB)이 옛 홋카이도동북개발공고(北海島東北開發公庫)와 통합해 1999년 일본정책투자은행(옛 DBJ)로 출범했다가 2007년 정책금융기능을 정책금융공고(JFC)로 떼어낸 뒤 상업금융 업무를 민영화하기로 하면서 2008년 10월 1일 새롭게 출범한 곳이 DBJ(새 DBJ)다.
당초 일본 정부와 국회는 DBJ를 출범 후 5~7년 안에 민영화하려는 목표를 세웠지만 뜻하지 않은 초강력 재난을 만나 수정을 거듭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출범 직후 터져나온데다 동일본 대지진이 잇따르는 바람에 JFC만으로 버겁다고 판단, 위기대응과 실물경제 재생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은 것. 민영화 일정은 2012년 4월부터 5~7년 뒤로 미뤄졌다가 다시 2015년부터 5~7년 후로 밀렸다.
최대한 서둘렀다면 내후년인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민영화가 끝났을지 모를 DBJ 민영화는 이제 2020년 4월 이후로 기약을 늦췄다.
하지만 DBJ가 지향하는 모델은 투융자일체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성 높은 금융기관으로서 위상을 확립하는 것에는 변동이 없다고 한다.
장기융자업무 중심에서 고객들의 니즈 다양화에 장기적 프로젝트 심사능력을 활용, 구조화금융이나 펀드투자 비율을 높였던 터였다.
민영화 후에는 이같은 투융자기은을 강화해 장기적 안목에 바탕을 둔 투자와 융자 두 바퀴로 광폭행보를 펼치려는 계획 역시 살아 있다.
신디케이트론과 PF금융 같은 전통적 업무 말고도 M&A를 비롯해 에쿼티투자는 물론 LBO(차입인수)와 MBO(경영진 지분인수 방식 M&A) 등 갈수록 수요가 커지는 IB업무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비록 3월 말 현재 우리 돈으로 대출잔액 약 159조원, 자산 약 186조원에 이르고 있어 작아보일 수 있지만 관록과 역량은 낮춰 보기 어려운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 경제개발-인프라-지속가능과 기술혁신 동시추구
DBJ쪽에선 스스로 역사를 놓고 공식적으로 7단계 시기구분을 한다.
일본 경제 성장과 그에 따라 민간 금융기관들이 뛰어들지 않지만 새로 개척해야 할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자연스럽게 확보하는데 성공한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그 덕분에 일본 정부가 인위적으로 공공부문 축소와 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장기투융자 IB경쟁력으로 준비된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시기별 역할을 보면 1950년대부터 조선과 자동차 등 일본 주력산업 육성에 나섰고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고도성장 기반 구축기엔 에너지, 원자재 수입에 필요한 선박금융과 화학공업 설비투자 등으로 업무를 이었다. 이어 일본 기업들의 신기술 도입과 차세대 설비투자 등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도심 핵심시설이나 기간교통망 투자 지역균형 발전 투자 등 사회 인프라 확충을 꾸준히 지원했다.
국내 정책금융 발전과정과 달리 DBJ 업무 중에는 이미 70년대부터 지속가능사회를 지향한 친환경 대규모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었고 풍력발전투자에 앞설 수 있었던 것도 DBJ가 한 몫했다.
특히 99년 홋카이도동북개발공고와 통합한 뒤로는 신금융기법을 적극 도입해 다양한 금융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성가를 높였다. 무엇보다 민영화를 앞둔 기업이념은 국내 정책금융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으뜸 구호 “금융력과 미래를 디자인 합니다”부터 중장기 플랜을 깔고 가는 정책금융기관이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창조적인 금융활동에 따라 과제를 달성, 고객들과 신뢰를 쌓고 풍요로운 미래를 함께 실현해 가겠다는 약속.
이들은 스스로의 DNA에 장기성, 중립성, 공공성(퍼블릭 마인드), 신뢰성이 핵심을 이룬다고 자부한다. 고객우선, 전문가정신, 글로벌과 로컬 가치를 통합 구현하며, 속도와 팀웍을 함께 중시하는 것을 행동기준으로 지향한다. 정책금융 재편의 폭과 깊이에 대해 적극적인 호평이 나오지 않고 있는 우리 나라 금융계로서는 앞서 모색하고 지향했던 금융집단을 타산지석 삼아 금융력의 미래 창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 DBJ 시대별 핵심역할 수행 사례 〉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