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탕 삼탕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
금융위원회는 3일 국회에서 열린 가계부채 청문회에 이어 4일 기획재정위원회에도 비슷한 진단결과와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등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실효성이 입증된 바 없었던 가계부채연착륙 대책을 앞으로도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 때부터 시작된 정책에 더해 새 정부가 등장시킨 저소득층 연체채무자를 위한 국민행복기금 수혜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뿐 하우스푸어 지원을 위한 금융권 자체채무조정 활성화는 약간의 개선에 불과하고 서민금융지원 강화, 대부업 관리 감독 강화 등의 처방은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반면에 거시경제 정책을 통한 근본적 타개 노력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함께 일자리창출 등 소득기반 확충 정책을 마련해 보겠다는 판박이 보고자료로 등장시켰다일시상환, 변동금리, 거치식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낮추기 위해 은행들이 오는 2016년 말까지 분할상환, 고정금리, 비거치식 비중 30%까지 맞추도록 한 목표 달성 역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내용은 ‘커버드본드’와의 연관성 덕분에 눈길을 끄는 처지다. 금융위는 커버드본드 입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라면서 은행의 장기·고정금리 조달처가 확보되면 가계부채 부담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는 물론 함께 국회에 출석한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모두의 공통점이 발견된 것도 흥미롭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사 과잉대출 억제 등을 통한 건전성 관리 강화와 비은행권 가계대출 관리강화에 힘쓰겠다는 대책을 앞세웠다.
금융위도 차주의 소득, 재산, 신용 등을 파악해 차주의 상황에 적합한 대출을 하도록 하는 의무를 금융사에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 모두 엄격히 할 것을 주문하는 시그널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대출금리와 중소상환 수수료 등에 대해 공시를 강화하도록 지도해 금융소비자 선택권을 넓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 건전한 대출 행태 감독강화와 서민 금융비용부담 경감 사이
시중은행 영업점포 한 간부는 “전반적으로 차주의 소득과 신용도 등을 적절하게 파악하라고 한다면 심사단계부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 십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소비자에 대해서는 금융사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엄격한 여신관리 정책을 강조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금융 지원 활성화 대책을 꾸준히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서민과 저신용자가 금융 빚 때문에 겪게 되는 고충을 덜어 주려는 취지 자체에 대해선 반론을 펴는 사람이 전혀 없다.
다만 저신용자 서민층의 금융비용 경감책과 지원책이 양산되는 동안 근본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일자리와 소득 관련 대책은 몇 년째 이렇다 할 변화가 없이 상대적 취약층을 위한 지원만 나오고 있는 것은 차상위층에겐 직접적 고통을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빡빡한 금융생활을 견디며 경기가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외통수만 제공한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 역시 일시상환대출의 장기분할상환대출로 전환을 확대하는 등 대출구조를 개선해 부채총량을 관리해야 한다는 처방 제시나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가계소득 증대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을 원론적으로 반복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유일하게 한은이 금융위나 금감원과 색달리 편 주장은 “가계부채가 대규모 부실화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2011년 6월말 연착륙 대책을 추진한 이후 부채 증가속도가 둔화되고 대출구조조 개선돼 시스템리스크로 확산될 우려는 크게 완화됐다”는 금융위 평가와 어긋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총론면에선 전반적 낙관론을 벗어나지 않았다.
금융정책 및 감독기구와 통화당국의 가계부채 인식은 전반적 낙관론 속에 취약층 지원 노력을 펴면서 최우선은 금융사 건전성 관리를 통한 시스템 리스크 방지에 포커싱하는 모습을 유지했다. 금융시장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릴 거시정책은 정부와 관련 당국 어느 곳에서도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