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의 한 지표로 작용하는 위험기준 자기자본제도(RBC, risk based capital)는 보험사가 가진 보험리스크, 금리리스크, 시장리스크, 신용리스크, 운용리스크 등 각종 위험을 정밀하게 측정해 이에 적합한 규모의 자기자본을 보유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로 지난 2009년 4월에 처음 도입됐다. 유럽발 금융위기 등 전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리스크 관리’는 보험사의 가장 핵심적인 업무가 되었으며, 금융당국에서도 이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적하고 RBC제도를 확대해 가고 있다.
RBC제도는 보험회사들의 준비 기간을 위해 도입 후 2년간 기존의 EU 지급여력비율 제도와 병행해 사용해 왔으며, 지난해 4월부터 전면 시행하게 됐다. RBC제도의 전면 시행이 1년 반을 넘은 시점에서 현재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향후 RBC제도의 방향성을 살펴본다.
◇ 감독당국…‘리스크 관리’ 강화에 총력
최근의 금융시장은 글로벌화 되었을 뿐 아니라 디지털화와 각종 파생상품 도입 등으로 인해 리스크 발생 요인이 커지고 있으며, 변동성 확대와 더불어 대형화, 통합화, 겸업화 되면서 금융권역간의 장벽 또한 완화되어 가고 있다.
RBC제도는 이러한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고, 보험사의 건전성과 감독의 국제적 정합성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 RBC제도는 자산운용리스크를 금리·시장·신용 등 3개 부문으로 세분화하고,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 특성에 따라 위험계수를 차별화해 리스크를 정밀하게 반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전의 EU식 지급여력제도는 리스크 측정의 정교함이 부족하고 자산부채 사이의 듀레이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측정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자산과 부채의 리스크 특성을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RBC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확대됐으며, 미국은 1993년, 일본은 1996년, 호주는 2002년, 영국은 2004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감독당국에서는 지급여력기준금액인 보험회사의 리스크량(=요구자본), 지급여력금액(=가용자본) 산출과 RBC비율을 감독하고 있으며, RBC비율이 10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적기시정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허창언 국장은 “금융회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특정 영업이나 상품의 위험이 상승하는 복잡한 시장환경 속에서 보험회사 건전성 감독을 위한 감독인력의 문제로 인해 RBC제도의 도입이 필요했다”라며, “감독당국에서는 리스크 중심의 감독 원칙에 근거해 리스크가 취약한 회사 중심으로 검사를 강화하고, 튼튼한 회사는 검사횟수를 줄이는 등 감독업무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은 RBC제도 이외에도 경영실태평가(CAMEL)와 리스크평가제도(RAAS)의 도입 등 리스크 관리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리스크중심의 감독 체제는 위험기준 자기자본제도(RBC), 리스크평가제도(RASS) 및 리스크공시 강화라는 3대 축으로 구성돼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전의 사후교정적인 규제방식에서 사전 예방적이고 원칙 중심의 감독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 “RBC제도 중장기적 보완 필요해”
그러나 이러한 RBC제도 역시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올해에도 몇차례에 걸쳐 RBC기준이 강화돼 왔다. 허창언 국장은 “RBC제도는 신뢰수준, 부채 시가평가, 내부모형 승인제도 부분에서 중장기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선 RBC제도는 자산에 대해서는 공정가치 평가, 보험부채에 대해서는 원가평가로 이원화 되어 있다. 따라서 향후 준비금 평가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RBC 비율의 정교한 산출을 위해서는 보험부채의 시가평가제도 도입에 대한 점진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RBC제도의 경우 리스크 세분화가 다른 국제기준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업계 전문가는 “현행 RBC제도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 해약, 사업비, 개정, 대재해, 장수리스크, 집중, 비유동성 등의 리스크 측정 항목으로의 단계적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뢰도 수준 역시 높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RBC제도는 도입 당시 새로운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95%의 신뢰수준을 설정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국제적 정합성 및 신뢰도 제고를 위해 신뢰도 수준을 95%에서 99%대로 상향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는 신뢰수준의 측면에서 RBC제도가 유로존 국가들의 리스크 관리 체계인 솔벤시2(SolvencyⅡ)에 크게 못미치고 있어, 국제적 정합성 및 신뢰도 제고를 위해 불가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RBC제도는 솔벤시2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스크간의 상관관계가 단순하게 반영되어 있다. 허 국장은 “정교한 RBC비율 산출을 위해 향후 RBC 제도 하에서도 개별리스크간 상관관계를 보다 정교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RBC제도는 회사의 자체적인 내부 모형개발 없이 표준모형만이 마련되어 있는데, 허 국장은 “아직 RBC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지 2년여에 불과해 내부모형 승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다만, 국내 보험사의 리스크관리 능력 제고를 위해 대형사를 중심으로 내부모형 승인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적정성에 대한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며, 중장기적으로 내부모형 승인제도가 도입될 것이므로 사전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 제도개선, 속도조절 필요
금융당국은 올해 들어 △신뢰수준을 기존 95%에서 99%로 상향조정 △보험위험액 산출기준을 상품별에서 보장별로 세분화 △금리가 떨어진데 따른 금리위험액 반영 등 RBC기준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보험사들이 이러한 당국의 속도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RBC제도 강화로 보험금 지급의 재원이 되는 책임준비금을 회사 내에 많이 적립하도록 함으로써 보험사의 자산운용은 반대급부로 위축되게 되고, 그만큼 리스크가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도 어려워진다. 가뜩이나 저금리와 금융위기로 자산운용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들로서는 진퇴양난인 셈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대형사들에 비해 금융감독원의 권고기준인 RBC비율 150%를 겨우 넘기는 중소형사들의 경우 실정은 더욱 어렵다.
올해 개선된 사항만으로도 RBC비율이 30%정도 낮아질 전망이어서 자본을 확충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이미 저금리로 인해 투자수익이 저하된 상태에서 당기순이익 규모가 감소했기 때문에 자본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감독당국은 올해 3분기부터 관련 규정을 개정해 지급여력금액 계층화, 보험위험액 신뢰수준 상향 등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허창언 국장은 “규제의 강도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기업의 국제화 추세와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 보험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현실적으로 단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를 통해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리스크관리는 금융회사의 생존에 직결되는 핵심 역량인 만큼 기업들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하며, 향후 제도개선을 통해 리스크 관리 능력을 향상시켜 보험산업이 한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RBC제도의 개선은 보험산업의 건전성 확보와 경쟁력 강화면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밀어붙이기식 추진보다는 보험사들이 실제로 제도를 내재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점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지급여력제도 개선 추진일정 〉
〈 RBC제도와 SolvencyⅡ 기준 비교 〉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