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은행(행장 강만수)이 길고 긴 대한민국 금융사 지반을 뚫고 틔워 낸 ‘뱅크-아트’ 물길이 협곡을 지나 너른 광야를 적시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점 제1회 KDB학생 미술대전 시상식에 오른 미술재능인들은 전반적으로 수줍어 했지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수 한국미술교육학회장 말마따나 “흠집이 있긴 하지만 창의성 높은 작품이 많아” 미래를 기대하기 충분했다. 이 회장은 “자유로운 마인드로 조화와 하모니를 잘 구축한 작품이 큰 상을 받”았다고 했고 기술이 모자라더라도 사람냄새 구수하게 나는 작품 창작에 힘써서 한국문화를 선도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강만수 행장은 “절로 즐겁게하는 작품도 많았고 높은 수준에 감탄하기도 했다”며 “생각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열정, 도전, 혁신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고 높이 샀다. 무엇보다 산은은 대회만 연 게 아니라 수상작 200여 점 모두를 본점 로비와 지난 달 29일 문을 열었던 본점 동편 야외 ‘파이오니어 갤러리(사진)’에 오는 16일까지 판매를 전제로 전시하고 있다.
우수상 100만원부터 대상 300만원까지 14명의 우수상 이상 수상자는 1주일 동안 미국 탐방 연수길에 오르는 특전말고도 전시 판매수익을 창작장학금으로 추가 지급받을 예정이다.
수상자 소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젊은 인재들의 창작열이 무한히 성숙할 수 있도록 화끈하게 돕고 나선 셈이다. 강만수 행장이 만약 철 지난 기존 ‘디자인 입국론’에 갇혀 있었다면 결코 낳을 수 없는 감동 어린 혁신이 본격화됐다. 아직 명확하게 개념화하기 이른지도 모르겠지만 ‘뱅크-아트’ 새 물결이라 일컬을 만 하다.
강 행장이 지난 달 20일 2318명의 예선 지원자 틈바구니를 뛰어 넘은 200여 명의 미술대전 본선 참여자에게 밝힌 소신은 이렇다.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미술을 후원함으로써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예술 및 정신적)품격과 경쟁력을 높여 보자는 취지”라고. 또한 강 행장이 야외 갤러리 개관 때나 미술대전 시상식 때 어록을 종합해 보면 미술부문 창작력 바탕이 없는 디자인 경쟁력은 사상누각이기 때문에 세계적 미술가가 나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할 계획이다.
백남준 선생 사후 한국 출신 최고의 국제적 설치미술 작가로 통하는 강익중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자 길이 58미터까지 전시시설인 파이오니어 갤러리는 학생 미술대전 상위 수상작을 선보인 뒤 1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2012 KDB전통공예산업대전·장터’ 수상작을 선보인다. 전통공예의 멋과 깊이를 살리는 데 공들이고 나선 이유 역시 문화산업 지원과 예술 품격을 격상시키려는 뜻이 담겨 있다.
UV필름과 제습기로 풍상을 견딜 수 있고 강익중 작가 작품이 가변형 큐브와 어우러진 파이오니어 갤러리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가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앞서 문을 연 은행내 갤러리들과 크게 다르다.
작품을 내 걸 공간이 마땅치 않아 혼자만의 작품을 지닌 시민이나 졸업작품전 또는 정기 전시회를 열고 싶은데 대관료 부담에 어깨 짓눌린 모임에게도 개방할 계획이어서 신진 유망 작가들을 위한 산실 노릇도 톡톡히 할 전망이다. 강 작가는 “미술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겅시 아니고, 미술 전시 또한 특별한 작가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며 기꺼이 참여했다. 언제든지 누구나 예술작품을 관람하며 바로 잇닿은 여의도공원 등을 활용해 즐길 거리를 극대화한 까닭 역시 ‘뱅크-아트’로 부를만 하다.
현재 산은 본점 남편에 조성하려고 추진 중인 ‘파이오니어 길’과 어울리면 서울을 대표 미술 테마 예술 공간이자 휴일 명소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우리 옛 선비가 지은 한시 가운데 정지상의 ‘송인’이 빼어나다. 후반 첫 구절 대동강물이 마를 날 있으랴(大同江水何時盡)는 싯귀는 홀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마지막,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거듭 푸른 파도를 더하니”(別淚年年添綠波)라는 원인이 있어 결코 마를 수 없다는 상상력을 몰고 오니까 감동스럽다.
산은의 뱅크-아트 새 물결은 젊은 예술지망생과 전통공예인 그리고 아직 예술의 도와 학과 술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땀방울로 뭉쳐져 푸른 파도를 거듭 더할 것이고 이 물결 덕에 대한민국 예술 품격이 마를 날도 없이 거듭 이어질수록 짙푸른 창해를 만날 힘이 샘솟을 것이다. 당장의 수익을 꾀하는 아트-뱅킹이 아니라 공공적 가치를 바탕에 깐 ‘뱅크-아트’에 나섰으니까.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