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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자보호재단] 현대 금융시장의 다윗과 골리앗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12-04-15 23:24

투자자 열 명 중 여섯명은 판매회사에 와서 투자펀드 선택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인식격차 해소해야 금융시장 바로 서

골리앗이 쓰러지는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은 모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은 싸움이었다. 대등한 싸움을 기대했을 리는 만무하고 꼬마가 얼마나 버틸 수 있나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다윗의 승리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겼기 때문이다.

현대 금융시장에서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격차는 다윗과 골리앗 이상으로 현저하다.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에 비해서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하며, 금융 관련 정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게다가 각종 협회를 통해 집단의 힘을 과시하며, 로비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바꾸기도 한다. 경영학에는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있어 학술적·실무적인 지원도 풍부하다. 그야말로 막강한 골리앗이다.

현대판 골리앗은 이익추구 성향도 철저하다. 지난 3월 골드만삭스 런던 지사의 그렉 스미스(Greg Smith)가 <뉴욕타임스>에 기명으로 투고한 내용을 보면 골드만삭스가 고객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골드만삭스에서 승진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첫째, 잠재적 수익성이 없어 회사가 처분하려는 애물단지를 고객에게 떠넘기기; 둘째, 회사에 이익이 될 고객을 잘 끌어오기; 셋째, 유동성이 떨어지고 설계가 복잡한 상품을 판매하기라고 한다. 하나같이 고객을 ‘봉’으로 보라는 내용이다. 그렉 스미스는 실제로 고객을 ‘봉’이라 부르는 임원을 다섯 명이나 보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뉴욕 현지의 반응은 덤덤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물론 금융회사와 고객과의 이해상충이 전혀 없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금융회사가 기업 공개를 통해 대형화되면서 이해상충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렉 스미스는 자신이 입사했던 12년 전에는 문화가 이렇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골드만삭스가 1999년 5월에 공개한 이후 서서히 문화가 바뀌었다고 본다면 얼추 계산이 맞다.

막강한 화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현대판 골리앗에 비해서 금융소비자가 가진 무기는 달랑 ‘합리성’ 하나인데 이게 생각만큼 예리하지 않다. 먼저, 무의식적인 행동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살펴보자.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은 가급적 왼쪽, 밝은 곳에 진열한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축구나 야구 경기의 심판들조차도 무의식중에 홈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고 한다. 홈팀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골프 경기는 전체 타수로 승패를 가리기에 한 타 한 타가 동일하게 중요하지만 골프 황제라 불렸던 타이거 우즈마저도 한 타를 줄이는 버디(birdie)를 노릴 때보다 한 타가 늘어나는 보기(bogie)를 피하려 할 때 더 공을 들인다고 한다.

의식적인 행동 역시 미덥지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심리를 시스템1과 시스템2로 설명한다. 시스템1은 거의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시스템2는 복잡한 계산 등 노력이 필요한 정신활동을 담당한다.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는 시스템2가 필요한데 이게 용량이 작고 쉬 피곤해지는 단점이 있다. 산책은 생각을 집중하고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작곡가 베토벤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산책하며 수많은 명곡의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걸음을 조금만 빨리 하게 되면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복잡한 길에서 좌회전할 때는 운전자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다문다. 운전자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단지 빨리 걷거나 잠깐 집중해서 운전을 하는 것만으로 시스템2의 용량이 다 차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현대 금융상품은 종류도 다양하고 구조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일반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만도 약 4천개나 된다. 이 모든 정보를 시스템2로 처리할 수는 없다. 결국 시스템1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는 하지만 심사숙고하지 못하며 오류도 많다. 예를 들어 익숙한 정보를 그대로 사실인양 인식하기 쉽다. 금융회사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마케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자자들이 과거 수익률이나 회사의 평판, 최근 인기 상품 등 자신에게 익숙한 몇 가지 기준으로 금융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도 시스템1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힘들면 스스로 선택을 포기하고 판매직원의 권유에 따라 투자할 상품을 결정하기도 한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의 서베이에 따르면 투자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판매회사에 와서 투자할 펀드를 선택한다.

금융상품과 관련된 분쟁에서 금융소비자들은 완벽한 합리성을 요구받는다. 현대판 다윗이 현대판 골리앗과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금융소비자들에게 완벽한 합리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더구나 현대판 골리앗은 현대판 다윗의 빈약한 무기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어 그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기까지 한다.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행동경제학 이론을 마케팅에 활용하며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정책당국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2008년에 발간된 ‘넛지’(Nudge)는 행동경제학을 이용해서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는데, 두 명의 저자 중 한 명은 현재 백악관과 같이 일하며, 다른 한 명은 영국 수상 직속 팀인 ‘Nudge Unit’에 자문역을 담당한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틀을 짜야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금융소비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합리성의 수준이 명확하게 파악되어야 보다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금융시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소비자의 사고 및 행동방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만큼 중요하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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