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적 해이 따지면서 중소기업 신용경색해결 ‘글쎄’
우리나라 은행들은 해외차입 의존도가 높고 원화가치가 급락함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다른 나라 은행 보다 심하게 받고 있다.
한국이 외화유동성 문제를 맞게 된 원인도 상당부분 은행이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대규모로 차입해서 중소기업 및 주택금융 등에 대출을 크게 늘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이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적정수준의 대출을 했다면 유동성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은행들은 소위 엔캐리트레이드, 즉 싼 금리의 일본 자금을 빌려다가 국내에서 대출을 과도하게 늘려왔다. 그 결과 부동산투기를 조장하고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악화되었다. 작년 9월 말 현재 은행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7년래 최저치인 10.79%로 떨어졌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글로벌 금융경색으로 외국투자자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국내 금융시장은 심각한 신용경색에 빠졌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방불케 하는 신용위기를 또 다시 맞게 된 것이다.
단기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의 침체로 전이되어 불황이 심화되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이러한 사태를 막고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는 은행채무를 지급보증하고 은행채를 매입하며 달러화를 공급하는 등 1300억 달러 규모의 금융구제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유동성 불안은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된다면 은행의 자산건전성은 또 다시 악화 될 우려가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수출이 크게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은 급락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 내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낮고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경영환경에서 대출은 위축되고 신용경색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용과 대출은 경제활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혈액과 같은 것이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 멀쩡한 기업도 도산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한국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받으면서도 기업대출을 꺼린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은행은 경기가 좋을 때는 대출을 권장하더니 경기가 어려워지자 자금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도 은행들이 금융위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대출기준을 강화하고 금리를 높이는 등 대출을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대출여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자본확충을 통한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면 대출자산을 줄이고 증자 등 자기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결국 대출여력을 높여준다고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지는 않는다. 경기침체기에 돈이 돌게 하면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그 결과 은행도 부실자산이 감소하고 수익성이 개선돼서 금융위기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개별 금융기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융불안이 고조되고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큰 불안한 상황에서 대출을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지난 달 국내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되었고 신용비용이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은행의 부실채권비율도 작년 6월 말 현재 0.70%에서 9월에는 0.81%로 높아졌다. 게다가 앞으로 경기침체가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는 이에 대처해서 지난 8일 은행에 대해 신용보증 비상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했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서 신용보증기관의 심사기준을 완화해 중소기업이 보증서를 쉽게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신용보증을 담보로 대출할 경우 자기자본비율의 부담 없이 중소기업에 대출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위기상황이고 비상사태이다. 따라서 정부지원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를 따지면서 중소기업의 신용경색을 해결할 수는 없다. 돈이 돌게 하고 은행이 대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해소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