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기관 최소 공익성마저 저버린 행위” 지적
12월말 결산법인인 은행과 카드사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밀어내는 디마케팅(demarke ting)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상승을 목표로 건전성 높이기에 나서면서 수익기여도가 낮은 고객들에 대한 대출금 상환 압박을 가시화하고 있다. 신용카드사 역시 부대서비스 사용기준을 대폭 강화해 이른바 ‘체리 피커’(Cherry Picker)를 솎아내고 있다.
다만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 대출상환 요구 보다는 만기 연장할 때 시장리스크를 적극 반영해 종전보다 2배 가까운 추가 금리를 요구하는 방식 등으로 상환하거나 연장해주고 있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은 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익에 큰 도움이 되는 큰손들 하고만 거래하겠다는 것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은행의 횡포라며 은행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소리까지 높아지고 있다.
◇ 금리 높여 신규 및 기한연장 억제
은행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수익성 관리에 ‘올인’하면서 이른바 수익기여도 낮은 비우량한 대출자산 걸러내기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는 등 사실상 생계형대출에 대한 디마케팅을 본격화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들의 BIS 비율은 평균 10.79%, 기본자기자본비율은 평균 8.28% 정도된다”며 “현재 은행들이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체적인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결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비우량 자산을 줄여 BIS비율을 올리고 수익성도 높이기 위해서 디마케팅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기존 대출 기업에 대해서는 기한 연장 때 회수율을 높이도록 독려하고 리스크에 따른 가산금리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출 기한이 지나면 10%정도를 갚고 나머지 90%에 대해선 기한연장을 하게 되는데 과거 신용도가 좋고 경기가 좋을 때는 5% 정도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기한연장 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최근 신용도가 나빠진 기업에 대해선 이 회수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금리를 정할 때 조달비용, 부도 발생에 대비한 충당금, 리스크 프리미엄 등의 여러 요소들을 감안하게 되는데 부도율이 높아지는 기업들에 대해선 충당금, 자본비용 등이 가산되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 한 임원은 “그동안 은행들이 가격경쟁을 해왔기 때문에 최근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다 보면 금리가 올라가고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들은 이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인위적으로 회수를 하거나 ‘나가라’고 하지는 않지만 가격을 높임으로써 이 가격에 맞지 않는 고객들은 자연스레 이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은행들이 신규는 물론이고 기한연장 또한 어렵게 하면서 대출 증가율을 낮추고 우량 고객에 선별적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사실상의 디마케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은행들이 대출세일에 나서면서 경쟁은행들보다 금리를 낮춰서 한명의 고객이라도 끌어모으려고 했던 행태들에 비춰 보면 금리 인상요인들을 원칙대로 반영하는 정상적 시스템에 의한 금리 인상이라도 기업들에게는 그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근 경기하강 국면에서 이 정도의 여신포트폴리오 조정 없이는 부실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카드사 부대서비스 사용기준 강화
신용카드사 역시 최근 소비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돈 안되는 카드회원을 밀어내는 디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출혈 경쟁을 마다않던 신용카드사들이 수익성이 좋은 카드대출을 억제하는 등 보수적 영업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실물경제 위축으로 기존 대출에 대한 부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데다 자금 확보마저 어려워지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2월, 당시 신선한 혜택인 버스 및 지하철 100원 할인이라는 서비스로 인기를 모았던 ‘하나 마이웨이’카드의 부가서비스 자격요건이 내년 2월 1일부터 최근 3개월간 이용금액 30만원 이상에서 월 30만원 이상으로 크게 강화된다.
이 카드의 부가서비스는 △버스 및 지하철 100원 할인 △대형 할인마트 5~7% 할인 △주유 및 영화관람 할인 등으로 신규고객 인기몰이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출시 두 달 만에 ‘하나 마이웨이 카드’는 지나친 부가서비스로 인한 업계 과당경쟁을 염려한 금융당국의 권고로 카드 발급을 중단했고, 기존 회원에 대한 혜택은 카드 유효기간까지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게 됐다.
롯데카드도 그동안 LG파워콤 가입자들에게 카드 이용액과 상관없이 인터넷 요금을 월 10%씩 할인받을 수 있었던 ‘엑스피드 롯데카드’의 부가서비스 이용가능 실적을 내년 1월부터 강화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최근 3개월간 월 평균 10만원의 이용실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 7월부터 할인 미적용 최소 이용 금액을 기존 3000원에서 5000원으로 높이고, 전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2~3개월 무이자 할부를 일부 가맹점으로 축소하는 등 부가서비스 내용을 크게 줄였다.
우리멤버스카드의 멤버스포인트 추가 적립 서비스와 자녀상해보험 서비스를 9월부터 폐지했다.
카드사들의 일방적인 부가서비스 축소는 현재 카드 표준약관이 카드사 쪽에 유리하게 돼 있어 소비자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표준약관을 보면 카드사는 3개월 전에만 통지하면 회원에게 제공되는 포인트 및 기타 서비스를 회사의 영업정책이나 제휴업체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변경 또는 중단할 수 있다.
현대카드 한 관계자는 “내년도 카드시장 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카드사들은 ‘돈 안되는’ 고객들에 대한 부대서비스를 줄이려는 분위기”라며 “은행권과 같은 ‘적극적 디마케팅’은 아니지만 고객 서비스를 카드사용 실적에 따라 차별화하는 ‘소극적 디마케팅’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과 카드사의 이같은 다마케팅 행태에 고객들의 불만도 높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들은 “고객을 유치할 때는 파격적인 혜택을 앞세워 카드발급을 유도해 놓고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고객을 기만하는 행동”이라며 “고객들의 부가서비스 축소를 통해 수익성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 디마케팅 : 기업들이 자사 상품에 대한 특정 고객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는 마케팅 기법. 2000년도 이후로는 금융기관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돈 안되는’고객을 밀어내는 활동을 비롯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모든 유형의 마케팅 전략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 카드사별 서비스 축소 현황 >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