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승장에 가입했던 투자형 상품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면서 포트폴리오를 설계했던 PB들도 고개를 들기 힘들 지경이라고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다소 엄살이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최근 일선 현장에서 PB들은 대체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사실 올 상반기까지 포트폴리오를 설계했던 PB들이나 조언에 따랐던 고객들도 견딜 만 했다.
지난해 대세상승장에 가입한 투자상품이 올초 마이너스가 났지만 시장전망이 밝은데다 투매 뒤 급등했던 학습효과를 떠올리며 그럭저럭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5월 중순 ‘2000p 재돌파론’ 등 장미빛 전망이 쏟아지자 저가매수에 나선 투자자들도 꽤됐다.
하지만 단꿈도 잠시. 최근 9월 위기설,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 잇딴 초대형 악재들로 증시가 몸살을 앓아 물타기한 고객들의 투자상품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PB들도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일들이 과연 PB들 탓일까. 손실을 못견뎌 ‘뿔난’고객들은 장이 좋을 때 추가상승을 믿고 본인의 투자성향보다 위험자산의 비중을 무리하게 늘린 공격적인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원래 투자성향은 안정형인데, 지난해 증시가 워낙 좋아 장미빛 전망에 취한데다 욕심까지 동해 펀드 등 위험자산을 키웠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명동에서 1000억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한 PB는 “이번 충격은 자산배분의 기본에 충실했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자기의 투자성향보다 과도하게 위험자산을 늘린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오버배팅에 따른 후유증이 뒤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위험자산을 늘리는데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데 PB란 직업의 한계도 작용했다.
PB는 고객의 자산관리 파트너이자 회사의 수익을 창출할 월급쟁이라는 이중적 지위에 처했다. 눈앞의 이익에 현혹돼 투자상품을 늘리려는 고객들을 막기엔 상품판매에 따른 실적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강세장에 고객들이 흥분하면 마음을 가라앉힐 PB가 투자상품 권유에 급급하고, 반대로 공포감에 빠지면 예금 등 안전자산을 늘리는 뒷북을 치는 식의 수동적인 자산관리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옥석가리기로 시장이 과열될 때 팔고, 공포감이 질릴 때 사는 역발상투자는 사실상 힘들다.
제대로된 자산관리를 원하면 PB들의 짐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그 해결책의 하나가 Fee(상담수수료)의 도입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재무설계를 해주고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가 대중화돼 있다.
PB들도 수익창출에 대한 부담이 훨씬 줄어 회사의 눈치를 보지않고 오직 고객을 위한 독립된 상담이 가능하다.
지난해 상승장에도 환매를 주장하고, 요즘 같은 약세장에도 과감한 매입을 권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포트폴리오 설계도 많아질 것이다.
PB들에게 화살을 돌리기 전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 주길 기대해 본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