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진한 성적표 문제는?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의 고객 1인당 교차판매 상품은 채 2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이 1.5개 정도에 머물렀다면 올해는 1.7개에서 은행에 따라 많게는 1.9정도 수준에 그쳤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교차판매로 인정하는 기준이 다 달라, 은행별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평균 2개를 넘는 은행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웰스파고 은행의 소매금융고객 5.2개, 기업금융고객 6개 이상(2006년 현재)을 비롯 시티은행의 경우 일반 고객의 평균 상품수인 3.6개와도 그 차이가 크다.
즉 3, 4년 전부터 교차판매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은행권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최고 경영진의 교차판매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부족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인 실적과 업적을 요구하는 판매 실적 위주의 국내 은행 분위기로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어렵게 해 계속적인 교차판매의 기회를 상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교차판매는 일종의 관계 마케팅으로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제공도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묶어서 팔수 있는 팩키지 상품군을 갖춘 은행이 거의 전무하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교차판매 상품이라 하면 예금을 가입할 때 카드나 대출을 결합시켜 금리우대를 하는 정도 수준이다. 즉 고객의 자산 포토폴리오 하에서의 패키지 상품제공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내에서 교차판매의 최강자라 불리는 웰스파고는 ‘웰스파고팩’, ‘비즈니스서비스팩키지’ 등 10개 이상의 팩키지 상품 세트를 구비하고 자유자재로 고객의 상황에 맞는 맞춤설계를 하고 있다. 비이자수익이 157억달러(2006년)로 총수익 375억달러의 44%에 해당되는 것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상품 개발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 제일 중요한 자산은 인재(人材)
상품개발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이 상담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인적역량의 업그레이드이다. 신상품이 출시되면 밀어내듯이 아무고객에게 권유하거나 판매하는 등 과거의 습관을 빨리 벗어나 상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 세일즈 스킬, 고객에 대한 개인정보 분석 등 전문적인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은행들은 교육 강화에 나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일, 주, 월 단위로 교육프로그램을 체계화 시키고 집합연수, 개별연수, 사내방송 등 다양한 루트로 교육을 진행해 올해 펀드 수탁에 있어 가장 높은 증가액을 기록했다. 하지만 투자상품의 교차판매에 있어서 고객의 리스크 프로파일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출시되는 투자상품의 판매증대에 치중했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지동현 국민은행 경제연구소 소장은 “종합적인 상담서비스와 함께 팩키지 상품을 제공해야 교차판매로서의 의미가 있다”며 “국내 은행들은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토폴리오를 짤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 장기근무제로 고객관계 관리해야
박동신 농협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역시 “직원들에게 교차판매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교차판매 제고를 위한 인사, 평가, 교육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와코비아 은행처럼 지점을 평가 시 지점의 단기적인 손익 대신 고객명단별 관리진척사항, 고객서비스의 질, 그리고 판매생산성을 평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직원의 빈번한 교체는 고객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구축에 도움이 안 되므로 지금의 순환근무제를 장기근무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현재 은행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5~6년으로 평균 3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순환근무를 하면서 경험을 쌓게 한다는 것이 은행측의 설명이다.
이와는 반대로 박 수석연구원은 “직원들이 순환근무를 해서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크게 없는 것 같다”며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7년 이상은 한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2년 정도는 고객과 돈독한 관계형성에 주력하고 그 다음은 본격적으로 마케팅활동에 나서는 기간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처럼 한 고객을 직원이 전담하는 것이 영업에는 효과적이지만 은행의 관례상 불가능하므로 적어도 7년 이상은 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 관계자는 “직원의 자산관리 능력을 비롯한 실력과 신뢰가 영업 실적의 바로미터가 된다”면서 “VIP담당 직원이나 PB인 경우는 특히 장기근무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업점에서 번호표를 뽑은 후 차례가 되었음에도 평상시에 신뢰를 쌓은 직원과 거래를 하기위해 또다시 기다리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따라서 무엇보다 경영의 연속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교차판매 같은 수익성 중심의 경영은 단기업적주의를 지양하고 고객과의 장기관계 형성을 통해 이뤄지므로 지배구조의 연속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우진 딜로이트 컨설팅 전무는 “교차판매를 위해서는 정보구축, 고객 분석 전문가 영입, IT 구축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며 “그렇다고 당장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처럼 단기재임 풍토에서는 교차판매 같은 수익성 중심의 경영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규민 기자 bk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