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에 10원짜리가 화폐가 아니라면 벌써 그 값이 폭등해서 그걸 모아둔 코흘리개들에게 재테크의 기쁨을 맛보게 했으련만, 아쉽게도 화폐란 놈은 넘쳐나도 값이 내려가지 않고 구경하기 힘들어도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 유일한 물건이라 그럴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수단은 가격이다.
요즘같이 배추가 금값이라면 배추가 풍년인 곳에서 모자란 곳으로 자연스런 이동이 일어나고, 그 이동은 양 지역의 배추값의 차액이 수송비를 보전하고도 이윤이 남을 때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제주체들이 알아서 수행하게 되는 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라 하겠다.
하지만 화폐는 이동에 의하여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않는 재화라 수급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특정 경제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재 이 일은 한국은행에서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잘못된 사용습관으로 인하여 지폐나 주화가 조기퇴장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아마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조기 퇴장율을 보이는 나라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한때 골프장에서 볼마커로 10원짜리 동전을 쓰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약 3만5000원의 주화가 잠자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주화제조에 매년 300억원의 비용이 지출되는 현실은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지폐 역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4년 연속 한해 10억장의 지폐가 조기 폐기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는 신권교체가 겹쳐 이미 8월에 161억원, 장수로는 11억4600만장이 폐기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행 화폐관리과에서 하루에 잘려나가는 지폐가 1.7톤 180억원 정도다.
물론 한국은행에서 돈 깨끗이 쓰기 및 동전 다시쓰기 운동을 시행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현금물류’라는 말을 조어(造語)하여 써오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곳이 대한민국에서 한국은행 다음으로 현금을 많이 취급하는 곳이다보니 자연스럽게 현금의 유통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말이 돈이지 이를 매일 만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돈이 아니고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화물일 뿐이다.
따라서 이를 효율적으로 저장, 운반, 처리하는 일은 일반 화물물류 못지 않은 시설과 시스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섬세한 보안과 관리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화폐의 수급은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에 따라 현금이 필요한 경제주체와 남아도는 경제주체간의 직접거래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금융기관을 경유하는 간접거래 방식을 취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폐나 동전의 퇴장율이 높고 특히 금융기관마저 소액주화의 취급을 기피하는 요즘 상황에서는 물류비용 최소화를 시현할 수 있는 민간기업의 육성을 통해 현금물류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절실해 지고 있다 하겠다.
예컨데 동전의 경우 한국은행에서 대량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주화수급센타를 운용하고 있으나, 이 같은 기능도 민간기업과의 협조를 통해 보다 더 원활한 기능을 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도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수년전부터 현금물류사업에 진출하여 왔으며,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하여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금물류의 선진화가 일개 기업의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인프라를 과감히 민간에 개방하고 제도적 규제나 제약요인을 완화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0원짜리 동전을 못구해 아침부터 동분서주하는 편의점 주인, 천원짜리가 모자라 애태우는 마트주인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