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본주의가 그 절정기에 사회주의를 붕괴시킬 당시 근대자본주의 내부에서 이미 예기되어오고 준비되어온 변화는 금후 수십 년 내에 탄생할 시장중심 사회의 변종(變種)으로의 변화이고 결코 종전의 자본주의의 양태 또는 그 쇠락과 같지 않으리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가 많았다.
즉 사회주의계획경제에 승리한 바로 자본주의 속성으로서의 자질 즉, 혁신, 학습, 적응, 발명추진력이 이번에는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뀔 수 있는 시장경제의 새 틀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21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노동력은 비록 대부분이 시장경제의 틀 안에 머물겠지만 결코 자본주의의 틀 안에 갇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시장이 도처에 있고 노동자는 고용주가 소유, 판매하는 상품의 생산을 위하여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즉 제조되는 상품과 노동력 자체가 매매대상이 되는 상품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경제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J. 호지선」이라는 학자는 「경제학과 유토피아」라는 그의 저서에서 “순수한 자영 노동자를 주로 외주하거나 고용하는 기업은 이미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개인소유 제도와 시장이 엄존하는 한, 사회주의는 물론 아닐 것이지만 사실 자본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진화한 기묘한 하이브리드(Hybrid)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생산과정이 복잡화, 고도화되고 노동자에게는 고도의 지식과 숙련도, 그리고 개성이 요구되는 가운데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학습, 혁신, 적응력 또는 이와 병행해서 특화할 수 있는 차별적 능력에서 나온다.
이미 한 세기 전에 「T. E. C. 레즈리」라는 경제학자가 “경제계는 단순에서 복잡으로, 단일성에서 다양화로, 일견 깨질 것 같지 않던 관습도 변화로 바뀌고 치달아, 아는 것(旣知) 에서 모르는 것(未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였는바 탐구하고 학습하고, 혁신하며 창조하는 능력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오늘날의 법칙을 이미 예지ㆍ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경영관리의 저명한 학자 「M. 포―터」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개선하고 혁신하는 능력이 높은 기업이다”라고 갈파했지만(「환경-경쟁 관계의 새로운 구상」) 학습력과 적응력이 빠른 사람들만이 기업에서 성공할 것인바 복잡하고 개방화된 동태적 시장경제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자세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개성있는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S. 즈보후」도 그의 책자 「스마트한 기계시대에 즈음하여」속에서 “학습은 생산 활동의 중심이며....... 학습은 새로운 노동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앞으로 점차 노동자의 대부분이 노동력만이 아닌 서비스, 공헌성과 능력, 숙련기술, 독자적 개성을 판매하는 독립계약자화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기술가치보다도 아이디어가 가치의 원천이 되는 지식경제시대에서 중요시되는 자산의 대부분을 이러한 신종의 독립노동자가 점유하기 시작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기업은 지식을 공동으로 축적, 결합, 창조하는 상기한 독립지식노동자들이 집합한 연합체로 바뀌고 기업의 문화는 지식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자주적으로 협조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체제로 바뀌리라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이미 철지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가치판단 논쟁은 무의미해진 이상 이러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학습하고 변신하고 자기혁신하며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한편 구태를 타파하는 고도의 상상력(Concept)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포스트·자본주의라는 새 체제에서의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는 단순히 복지주의라는 사회적 보시(布施)에 안주코자하는 안일에 젖은 사람들은 물론 분배우선정책에 매달려온 사회주의적 포퓨리스트 정부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환시킬 것임이 틀림없다.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급속히 변해간다. 미국 자본주의 침략체제냐 아니냐 공허하게 논쟁하는 우를 범하기보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적응해 나갈지 고민하고 실리를 취하면서 진로를 모색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개인, 기업, 정부 모두에게 현명하고 불가피한 명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부인하거나 거부하더라도, 또 싫어하던 좋아하던, 원하던 원치 않던,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할 우리들은 글러벌 경제의 틀과 굴레에서 탈피할 수 없다. 결국 글로벌 경제를 인정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C. 리드비―트」의 결론적 충고처럼 “그래도 글러벌리즘만이 이 세계와 여기에 사는 인류를 살릴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른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