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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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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03-02 09:10

글로벌 초일류 금융자본 성장기 (1) 영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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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 JP모건 HSBC…新금융기법과 인수로 성장 발판

골드만삭스…정도 고집·인재 중시로 성공

글로벌 초일류 금융자본은 무엇이 오늘날의 그들을 만들었을까?

영미계 대륙계 일본계 등 거점을 둔 곳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성장과정을 거쳐왔다.

영미계 금융자본들은 산업성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중앙은행의 역할까지 자임할 정도로 산업자본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무기로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간 것도 특징이다.

씨티은행은 1812년 자본금 280만달러로 뉴욕상인들의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때문에 상인들에게 단기대출과 요구불예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씨티가 변한 것은 1891년 스티말 회장이 취임하면서다. 스티말 회장은 미국경제가 제조업 성장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행의 대형화를 시도한다. 단순한 예금과 대출업무에서 벗어나 신용대출등과 같은 업무를 도입한다. 당시는 대부분의 은행들의 지역 중심의 중소형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씨티의 행보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미국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해외에 지점을 개설한 것도 씨티였다. 이러한 세계화 확대전략으로 씨티는 이미 1929년 세계 최대의 상업은행으로 부상한다. 이러한 씨티 전략의 밑바탕에는 스스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한다는 경영방침이 깔려있다.

세계 최초의 자동화기기와 무인점포를 설치했으며 신용대출 당좌예금 양도성정기예금(CD) 홈뱅킹 무료 인터넷뱅킹의 원조도 씨티이다. 바젤Ⅱ에서 강조하는 종합적인 리스크관리 체제 도입에도 씨티은행이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HSBC는 원래 1865년 홍콩에 진출한 스코틀랜드 상인들이 중심이 돼 설립됐다. 195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홍콩을 거점으로 성장하다 1965년에 이르러서야 상하이까지 업무를 넓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급격한 정치 경제적 변화속에서 기업인수 및 제휴를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전세계로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홍콩의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홍콩의 발권은행이기도 할 정도로 본거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인수가 시작된 것은 1959년 영국중동은행과 상업은행을 인수하면서다.

1970년대 이르자 각 계열사들의 명성과 특수성을 살리는 방향의 인수를 전개한다. 1992년 영국 미들랜드은행을 인수해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 및 금융서비스 기관으로 변신한다. 이 은행을 인수하면서 HSBC투자은행을 출범시켜 런던에서 증권 및 상업금융 사업분야를 통합시켰다. 2000년에는 프랑스의 주요 은행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신용상업은행(CCF)을 인수해 유럽지역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다. 같은 해 메를린치앤드컴퍼니와 공동으로 전세계적인 온라인 금융 및 투자서비스회사를 설립한다.

JP모건의 모체는 1838년 세워진 피바디은행(런던상업은행)이다. 하지만 모건 가문이 은행을 인수하면서 시계금융시장의 주역으로 자리잡아왔다. JP모건은 미국의 중앙은행역할을 하며 근대산업의 토대를 만들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200개가 넘던 철도회사를 합병시켰고, 에디슨의 회사를 인수해 제너럴일렉트릭(GE)을 세웠다.

190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정부의 정책에 깊숙이 간여하며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 이익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1950년대가 되자 JP모건에서 독립한 모건스탠리는 세계적인 투자은행강자로 떠오른다. 197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대적인수합병기법을 선보이며 월가에서 가장 공격적인 사냥꾼으로 변신한다.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창업했다. 처음에는 상업어음을 거래하는 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씨어스 로벅, 울워스, 컨티넨탈 캐앤머크 등의 지금의 세계적인 IB로 성장시켰다.

특히 1956년 사상 최대규모였던 포드자동차 주식공개때 공동주간사를 맡았고 1967년 기관간 대규모 매매거래에 성공함으로써 1970년대 후반부터 선두적인 투자은행으로 자리잡았다.

골드만삭스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차입매수(LBO)를 통한 기업인수합병이나 정크본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상 정도를 고집했기 때문에 크게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큰 손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들어 기록적인 수익을 내면서 1993년에는 세계최고의 수익을 달성한 회사로 기록됐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인재덕분이다. 존 와인버그와 로버트 루빈이라는 최고의 인재가 주인공들이다.

이러한 인재확보 노하우는 아시아 동유럽 라틴쪽에서 인적네트워크가 풍부한 저명인사를 해당 국가의 고위직에 앉혀 성공의 발판을 만든 것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월터 먼데일 전 주일대사를 일본담당 자문역으로 두는 것이 대표적이 사례다. 인력의 부침이 없고 팀워크가 탄탄한 은행문화를 갖고 있어 최고의 인재들이 지도자를 맡고 구성원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 유대인 전통을 고수하며 ‘나’보다는 ‘우리’라는 의식이 강하다.



한기진 기자 hkj7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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