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이나 장기 목표는 조직이건 국가건 간에 필요할 뿐더러 집권 후반기에 이런 내용들이 나온 것은 때 늦은 감이 있다.
지난 30일 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논쟁의 초점은 향후 25년간 행정부가 추구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증세건, 국채건 간에 약 1100조원을 조달해야 하는데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부 국채로 메우게 되면 이자 비용만 약 500조원이 되리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행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찬성보다는 반대가 우세하고, 일각에서는 집권 후반기에 이런 보고서를 내놓는 배경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한 실정이다.
이런 비판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여권의 한 당직자는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1인당 소득을 4만 9천 달러 까지 올리고 삶의 질을 세계 10위까지 올리는데 어느 누가 반대하겠는가. 방과 후에 학교를 활성화해서 입시뿐만 아니라 예체능에 대해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5년 이내에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흡수하고야 말겠다는 내용에 대해 어느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행정부가 돈만 내면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도와주겠다는 주장에 대해 못내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금이건 국채건 간에 재원만 투입되면 교육, 주거, 의료, 노후, 육아비용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밋빛 미래를 선듯 믿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보고서 안에는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 전략과 같은 대단히 매력적인 단어들이 들어 있지만, 못내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근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나라가 세금으로 잔득 거두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일은 가능한 일인가.
이것에서 비롯되는 비효율이나 낭비는 없는가. 이런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민간의 투자의욕이나 근로의욕의 감퇴는 없는가.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를 키우고, 이런 저런 일들을 담당할 수 있는 공무원이나 준공무원 신분의 사람들을 잔뜩 뽑은 나라들이 이미 치룬 비용이 무엇인가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물론 우리는 희망도 필요하고 비전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비전을 올바른 방향을 향해야 한다. 정부의 규모를 잔득 키워서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주기 위해서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모양새를 짜여져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근래에 정부의 예산규모가 팽창하는 속도,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속도, 각종 국책사업들이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펼쳐지는 속도, 게다가 별다른 제어장치 없이 공무원과 준 공무원 신분의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스럽게 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휠씬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들이 비효율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20년, 30년 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거대한 예산규모와 비대한 관료제도로 무장한 그런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상은 가장 효율적이고 작은 정부로 구성되고 민간의 역동성이 차고 넘칠 정도로 다이내믹한 한국이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 규모를 가능한 줄여나가는 일에서부터 해답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일들을 민간이 주도할 수 있도록 시장의 영역으로 넘기는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역동성이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사회의 곳곳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영역의 확대를 통한 사회 복지의 강화는 결코 우리의 여력이나 우리의 미래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가능한 수익자 부담의 영역에 많은 부분을 남겨 두어야 하고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공동 책임은 결국 무임승차의 문제와 관 주도의 거대한 낭비를 낳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선한 정부와 거대 정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정책들이 유행하는 것 같아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