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은 실적증가에도 규제에 묶여 마냥 축배만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고, 결국 금융당국의 정책에 맞춰 살길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고유영역을 1금융권에 빼앗기면서 영업확대가 앞으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부동산에서도 8.31대책으로 혜택을 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분명히 갈렸고 벤처투자는 정부의 지원책과 규제완화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여전사 또한 그간의 안정적인 순익을 이어가며 평탄한 한해를 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2005년 제2금융을 시리즈로 나눠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16일 마감된 솔로몬저축은행의 주가는 1만7450원이다. 올해 1월 2400원대로 주가가 출발한 점을 감안하면 70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같은 날 삼성동의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영업점. 대략 30여명은 넘어 보이는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은행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대기줄이 저축은행 창구에서 목격되는 것이 오늘날 저축은행의 모습이다.
연말을 앞둔 저축은행들의 분위기는 몇몇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실적 향상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이다. 솔로몬 한국 진흥 등 선두 업체들의 올 순이익 단위는 백억원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업계가 예상하는 12월 가결산 성적표는 PF관련 대출수수료수입증대와 주식시장 호황에 따른 유가증권 투자수익증가 등 ‘수’를 줄만하다. 그러나 실적축배의 이면에는 저축은행들의 고유영역을 빼앗기면서 영업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절박함도 숨어있다.
올해 저축은행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인정하는 실적 증대’이다. 저축은행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외형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주요 지역의 저축은행을 인수 ‘사세확장’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잇따라 지점을 신설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갔다.
결정적으로 저축은행의 성장에 기여한 것은 부동산 PF 대출의 증가였다. 정부의 8.31대책이 발표되자 1금융권이 부동산 PF를 축소하고 저축은행으로 PF가 몰렸다.
여기에 저축은행은 건설사, 시행사, 부동산신탁사 등에서 부동산전문가까지 고용하며 PF에 집중했고, 대출증가로 자금이 부족해지자 수신금리를 올려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는 저축은행의 자산증가로 나타나 일견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금융당국의 정책에 따라 건전성을 갖춘 대형우량저축은행들은 ‘지방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성장’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지분분산, 위험관리, 인력, 시스템 등의 냉정한 현실과 직면해야 하는 과제도 남겨두고 있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국 김용범닫기

◆ 대형저축은행이 주도한 성장세
저축은행은 잇단 금융사고와 대주주의 부정으로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다 지난해 말부터 재무제표의 지표들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 퇴출과 M&A를 동시에 겪으면서 체질을 개선한 결과이다.
저축은행은 1분기(7~9월)동안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1752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지난해 분기평균수익 753억원의 232%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총자산은 2004년 9월 34조원, 2005년 6월말 38조원으로 계속 증가했고, 불과 3개월 뒤인 9월말에는 39조원으로 또 늘었다.
하지만 9월말 자산에는 부산솔로몬, 예가람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중에 예금보험공사가 대지급한 자금 5600억원을 상환한 것이 포함돼 있어 실제 전체 저축은행 자산규모는 집계보다 클 전망이다.
이 기간 총수신은 각각 32조, 35조9000억원, 35조4000억원을 기록했고, 총여신도 각각 28조4000억원, 31조4000억원, 32조7000억원으로 역시 증가했다.
상위 10개사의 자산규모만 놓고 봐도 제일 1조8513억원(지난해 1조5838억원) 한국저축은행 1조5567억원(지난해 1조3469억원), 부산 1조3746억원(지난해 1조1921억원), 부산2 1조646억원(지난해 8671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신한국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고 현대스위스 9278억원과 토마토 8894억원으로 자산 1조원 돌파가 확실시 된다. 9월 이후에도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이 늘었고 이에 따라 업계가 특판을 실시하며 수신을 늘렸기 때문이다.
업계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솔로몬저축은행의 경우를 보면 총여신이 9월 1조5281억원, 10월 1조5959억원, 11월 1조6876억원으로 각각 증가했고, 마찬가지로 총수신도 9월 1조5367억원, 10월 1조6023억원, 11월 1조7164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적자로 체면을 구겨왔던 HK저축은행도 11월부터는 5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대열에 합류했다. 업계 전반에 걸쳐 순익과 자산모두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 김해근 사장은 “올해 시장은 기업리스크는 있었지만 시장리스크는 없었다”고 말했다. 시장상황이 저축은행들의 영업에 유리하게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반면 기업의 재무제표는 여전히 나빴고 서민경기회복도 더디기만 했다.
저축은행들이 한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지점 3곳 신설을 준비하고 있고, 진주저축은행은 창원지점 개설을 금감원에 신청했다.
이미 경기저축은행과 토마토저축은행은 수원 부천 및 일산 등지에 지점을 신설하며,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예가람·인베스트·신한국저축은행 등의 매각을 남겨놓고 있어 업계의 인수전을 통한 확장정책이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수는 과거에 비해 줄었으나 지점이 늘어 예전과 비슷한 영업망을 갖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산수익 모두 증가하며 분위기 고조
고유영역 빼앗겨 영업확대로 살길 모색
◆ 성장이면에 문제점도 존재
시장여건 개선덕에 저축은행이 호황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밝은 앞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사세를 확대하려는 저축은행입장과 먼저 내실을 다지라는 감독당국의 입장차이가 그것이다. 저축은행은 규모의 경제가 자생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우리보다 경험과 역사가 앞서 있는 유럽 저축은행들이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이뤄 오늘날과 같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동부저축은행의 경영고문인 스웨드뱅크 피터 만센 전 부사장은 “스웨덴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자율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다른 금융영역을 넘나들 수 있도록 시장에 맡기고 있다”면서 “스웨드뱅크 역시 100년간 100여개 저축은행이 통합/분리과정을 거듭해 스웨덴 최고 수준의 상업은행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동부저축은행 김하중 사장은 “금융당국이 제시한 건전성을 갖춘 대형저축은행은 지방은행으로 전환될 길이 열릴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생각은 이와는 다르다. 규제완화부분과 연관시켜 “업계가 지방은행 수준으로 자산규모가 증가했다고 해도 은행처럼 지분분산과 위험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의 지분이 분산되지 않아 오너의 의지에 따라 대출이 결정되는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금감원 김용범 국장은 “BIS비율을 은행처럼 철저히 조사하면 발표수치와 차이가 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증권, 방카슈랑스 등 수수료 수입부분을 완화시켜달라는 것과 금융결제원 가입 등 업계의 요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주장의 이유가 저축은행 고유 영업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데 있어, 앞으로 업계의 큰 이슈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 리스크관리가 내년 핵심
금감원은 내년은 ‘리스크관리’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명무실하게 리스크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최근 규제완화와 관련해 “풀어주는 만큼 리스크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김용범 국장은 “자산규모가 커지고 대출한도가 완화되면서 대출한 것 가운데 하나만 잘못돼도 회사에 위기가 닥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리스크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대손충당금 적립 및 이익잉여금 내부유보 등 건전성 개선을 위한 지도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동부저축은행 김하중 사장은 “저축은행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향후 부실 가능성에 대한 충격흡수와 재무건전성이 개선돼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 김해근 사장은 “리스크관리차원에서 규제는 필요하지만 영업은 과감히 완화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계가 2~3년짜리 장기예금 비중을 끌어올려 안정적으로 회사를 꾸려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기진 기자 hkj7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