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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간성과 공동체 지향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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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4-06-23 22:07

최동석 교보생명보험 부사장,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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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만의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 살든,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살든 간에 모든 인간의 삶에는 궁극적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결코 혼자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행위의 결과는 항상 그것과 관련된 공동체적 상황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성은 나와 너의 상호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가 무너지고 나의 이해관계가 너를 지배하거나, 너의 이해관계가 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공동체가 깨어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만 인간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자 카를 바르트(Karl Barth)는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존재하므로, 그가 구체적으로 인간답게 존재하는 것은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둘이 함께 있을 때이다.”고 말했다.

이 원칙의 가장 핵심적 요체는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인간성이 현대의 자본주의적 경제생활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공동체를 지향하며, 공동체가 형성되고 운영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바로 사랑의 인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인간성은 감정상태를 훨씬 뛰어넘는 고도의 이성적 판단 또는 고도의 인격적 행위로서 공동체를 완성시켜 나간다. 사랑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정도 실현되고 있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기도 하고, 충족되지 못하기도 한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처럼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공동체 지향성이 부정될 경우 개인적 실존은 물론이고 사회적 실존조차 소멸되는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망각한 개인주의와 개인을 망각한 집단주의는 모두 참다운 사랑의 인간성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참여의 가능성이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해 줄어들게 되면 사랑의 인간성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대표적인 경험 중에 하나이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현상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인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견해의 다양성은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견해를 조화시키고 그 중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아내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낼때 비로소 사회와 조직은 발전한다. 따라서 사랑의 인간성을 실현하는 길은 다양한 견해의 표출 속에서 가장 적합한 견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사결정에의 참여”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 결과 소수의 의사결정권자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법적 행동을 저질렀고, 그 피해를 아직까지 온 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다.

정치권력의 횡포, 관료들의 인허가권 지배력, 전문가들의 정보비대칭적 독점권이 정치 ·경제·교육의 영역에서 강화되면 될수록 의사결정 권한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독재적인 의사결정 메카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경제·교육 분야에 특히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 형식적으로 보면 흠잡을 데 없이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이러한 독점적 권력에 무력하기만 했다.

미국의 대기업인 엔론의 도산과 월드컴 사태에서 보았듯이 선진국에서는 투명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메커니즘을 무시하는 각종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독점적 권력의 횡포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다.

사랑의 인간성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의 의사결정이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게 된다. 사용자측에서는 투명한 경영권을 주장하면서도 혈연·학연·지연으로 인사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고, 노조는 노동자의 권익만을 일방적으로 주장 함으로서 마치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처럼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바로 이 참여의 원칙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참여의 원칙이 지켜지려면 조직 구성원과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 모두가 어느 정도 성숙해 있어야 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자측과 노동자측의 끝없는 이념적 대립을 보면, 나는 사용자측 지도자이든 노조측 지도자이든 정책 당국자이든 간에 국가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이를 해결해 나갈 만한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매우 안타까워한다. 우리 모두 탁 터놓고 얘기해 보자는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로 상대방의 카드와 전략을 훔쳐보면서 상대방을 때려눕힐 궁리만 하고 있으니, 어찌 생산적인 조직관리가 가능하겠는가. 모세와 바울이 보여 주었던 자기 희생의 모범이 지도자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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