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자회사 대출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삼성카드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카드에 3조~5조원가량의 크레디트라인을 설정, 유동성이 필요하면 한도내에서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삼성생명이 카드에 대해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감독당국은 다소 어정쩡한 태도다. 카드문제의 남은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구미가 당기지만 덥석 받아들였다간 뒷맛이 개운찮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추진하려는 카드지원 방안은 잘만 되면 카드와 생명, 감독당국이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괜찮은 아이디어다. 삼성생명이라는 든든한 `빽`이 뒤를 받쳐줌으로써 삼성카드는 일종의 `후광효과`를 받게 되고 이로써 카드문제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면 시장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삼성카드에게 삼성생명은 확실한 안전판이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극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왔고 현재 4조8000억원 가량의 가용시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6월까지 만기도래하는 채권을 시재만으로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최근에는 싸늘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회사채 발행이 순조로웠지만 올들어 나타난 시장분위기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삼성카드는 1월에는 카드채를 전혀 발행하지 않았고 2월6일 차환용으로 카드채 200억원을 6.95% 금리에 겨우 발행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시장에서 예상보다 높은 금리를 요구해 무리를 하면서까지 카드채를 발행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으로서는 일단 자본확충이 급선무다. 삼일회계법인이 잠정평가한 순자산부족액은 6000억원대로 다소 낙관적 수치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측 의뢰를 받은 삼정회계법인의 실사는 조만간 마무리된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증자를 이행할 삼성생명측의 실사가 조금 더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순자산 부족분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1조원 증자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문제가 해결되면 남은 것은 유동성 문제. 현재 충분한 시재를 쌓아두고 있지만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점점 어려워지고 시재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카드가 어려워진다면 증자에 참여, 새로 대주주가 된 삼성생명도 부담이다.
삼성생명이 대출한도를 5조원까지 한껏 늘린 것은 시장불안감을 차단하려면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굳이 자금을 빼내쓰지 않더라도 5조원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심리적 불안감을 차단,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잘만 되면 카드사는 발행금리를 떨어뜨려 조달비용을 아끼고, 보험사는 실질적 지원없이도 자회사 부실부담 가능성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감독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현행 규정은 기업구조조정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금감위가 생보사 자기계열사 신용공여한도에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당국의 공식입장은 삼성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으니 일단 좀 더 두고보자는 것이다. 내심으로는 큰 반대나 논란만 없다면 예외를 인정해주고 싶은 눈치도 엿보인다. 카드문제 재발위험을 사전에 차단,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시장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 예외를 인정할지는 꽤 고민을 해야 할 듯하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삼성은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우량계열사를 동원, 부실 계열사를 우회지원하는 셈이 된다. 돈에 꼬리표가 붙어있지는 않지만 생보사 자금은 계약자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인식이 강하다.삼성생명 마이너스 통장을 믿고 시장에서 카드 리스크에 대한 왜곡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대출이 실행될 경우 부실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생명과 계약자에게는 부정적 양향이 미치게 된다.
참여연대에서 득달같이 견제구를 날렸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삼성카드에 대한 삼성생명의 신용공여한도 확대 요청은 삼성카드 회생의 불확실성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보험계약자의 재산으로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삼성측의 특혜요구를 금감위가 승인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생명의 카드출자도 계약자 재산으로 이재용닫기

감독당국은 지난해 삼성생명의 완강한 거부로 생보사 상장방안이 무산되자 비협조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번 아이디어는 삼성으로서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다. 카드문제가 또 터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당국은 욕들을 각오하며 들러리를 설지 말지 저울질해야 할 판이다. 딱한 노릇이다.
(이데일리 제공)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