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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보험서 변액보험까지”… 80년 보험상품史

문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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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3-03-02 00:39

질곡의 역사속에서 고객의 위험보장 역할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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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기본특성 안 변해…‘보장+투자’상품 속속 등장 ▒▒

▒▒ 방카슈랑스 등 새 패러다임 도래…보험사 공동 준비해야 ▒▒


『국내 보험산업이 어언 80년의 역사를 맞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80년이라면 강산만 8번이 바뀐 셈이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산업이 눈코 뜰새없이 변하는 세상이라면 80년이라는 보험산업의 역사는 만만치 않은 시간인 셈이다. 그동안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은 수십차례 큰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이제는 은행, 증권과 더불어 금융업계의 한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됐다. 본지에서는 창간 11주년을 맞이해 보험산업 80년 동안 상품과 제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되짚어보고 현재 국내 보험산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국내 보험산업은 크게 광복전후로 나누어볼 수 있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는 보험산업의 태동기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1960년까지 생·손보협회가 창립되고 과당경쟁과 보험사들이 난립하는 격동기를 맞이하게 된다.

1961년부터 66년까지는 박정희 군사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보험산업의 전면적인 정비를 통한 정착기로 정의할 수 있다.

정착기를 지난 1967년부터 198 2년까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추진으로 보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성장기를 맞게 됐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자율화와 개방화를 통한 보험산업의 도약기로 정의된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보험시장의 환경변화와 금융산업의 재편에 따른 대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보험산업은 재도약기를 맞고있다.

이처럼 보험산업은 국내 근대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이제는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게 된다. 상품역시도 생·손보 모두 역사의 흐름과 같이하면서 수십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어 고객들의 위험과 재산을 지켜주는 충실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 1922~1944년

1922년에 조선총독부와 조선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이 출자해 자본금 500만원을 시작으로 화재, 해상, 운송보험 및 이들의 재보험영위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회사인 ‘조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현 동양화재)가 설립됐다.

이 당시 생·손보상품을 살펴보면 생명보험의 경우 사망보험, 생존보험과 같은 일반적인 형태이외에 징병보험이라는 특징적인 상품이 판매됐다.

징병보험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모든 국민에게 징병의무를 부과함에 따라 회사상호로서 징병보험 주식회사가 있었고 이 상품이 크게 보급됐다. 이외에도 종신, 생존, 양로, 정기보험이 있었으며 그 기본 구조는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종신보험은 유배당과 무배당으로 나뉘어졌으며 유배당상품은 회사에 따라 매년 또는 5년마다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종신보험에 특약으로 생존급부가 부가돼 그 형태에 따라 장수축하금, 연금형식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양로금부 또는 장수할증양로금부종신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됐다.

양로보험도 종신보험처럼 유배당과 무배당으로 나뉘었으나 보험기간 중 발생한 배당금에 이자를 부가하여 적립했다가 만기 때 일시에 지급하는 형태의 상품도 있었다.

또한, 생존급여가 부가된 양로보험과 연생양로보험도 있었는데 양로보험 역시 전기납과 유한납이 있었다.

이색적인 상품으로는 당시 태평양전쟁 임을 감안해 호국 또는 육군장교 양로보험이 있었으며 보험료 환급부 양로보험이라는 상품도 있어 타사와 차별화를 시도한 보험사도 있었다.

손해보험상품으로는 크게 화재보험과 운송·해상보험, 재보험 세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화재보험은 당시 시장주력종목으로 각 사의 경쟁이 치열했다. 이 당시에는 각 사가 협정한 요율을 그대로 준수하지 않은 채 요율을 덤핑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아 시장질서가 무시되고 있었다.

해상보험은 손보시장의 약 15%를 점하고 있었는데 당시 국적선이 없어 선박계약보험은 없었고 소액의 적하보험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 1945~1960년

이때는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계 보험사들도 함께 물러가자 그 빈자리를 미군정이 관리하게 됐고 국내 보험산업은 깊은 침체기를 맞이하게 됐다.

1946년 9월에는 국내최초의 생명보험사인 대한생명이 출범하게 된다. 그 이후 47년 2월에 협동생명이 탄생하고 그 해 4월 구 고려생명이 창설됐다. 50년대에 들어서는 흥국생명과 제일생명, 동방생명, 구 동아생명, 대한교육보험 등이 신설됐다.

광복 이후 대한생명은 장수보험과 양로보험을 판매했으나 이 두 상품 모두 장기보험으로 당시의 극심한 인플레로 인한 화폐가치의 저하로 고객수요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이에 따른 단기상품의 개발 필요성과 미군정의 권유로 최단기 상품인 1년 정기 이익배당부 단체보험이 개발됐고 이후 대생의 주력상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 업계공동상품인 축자보험이 개발됐다. 이는 당시 기록으로 보아 대한생명이 단독개발하고 나중에 다른 회사가 동 상품을 승인받아 그대로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기업체 구성원의 퇴직을 담보로 하는 단체보험과 자녀의 학자금을 보장하는 교육보험의 성격인 생존보험이 판매됐다. 단체보험의 경우 당시 사회적 불안으로 인한 직장인들의 불안감이 고조되어 총 계약건수 중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판매실적을 올린 생보사의 주력상품이었다. 단체보험 신 계약실적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단체퇴직보험은 대한생명 등 5개회사가 판매했는데 이 상품은 보험금 10000환당 월납보험료가 40환인 보험이었다.

생존보험으로 분류되는 교육보험은 58년 후반부터 구 동아생명을 제외한 전 생보사에 의해 개방, 판매됐으며 당시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한 성공적인 상품이다.

특히 생보업계는 교육보험상품의 판매로 개인보험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손보업계는 광복 후 미군정 초기에 신동아, 대한, 서울, 국제, 한국, 대동, 고려, 제일, 동방간이화재 등 무려 9개사가 신설됐다. 전 후에도 해동, 안국, 한국무역, 동방, 범한, 한국교통보험, 한국손해재보험 등이 난립해 경쟁이 심화됐다.

금융기관의 담보물에 대한 화재보험 모집경쟁이 심화돼 요율할인, 외상계약체결 등 각종 변칙행위가 자행되는 가운데 전시교역물자의 증가로 1953년부터 해상보험이 개시됐다. 또한 전후 복구사업의 진행과 함께 교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1957년 한국교통주식회사가 설립됐다.



■ 1961~1976년

5·16군사 쿠데타 이 후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도 보험산업정비에 나섰고 국민저축증강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이 당시 상품을 살펴보면 생보의 경우 단체보험과 개인보험으로 양분된다. 단체보험은 62년 국민저축조합법이 제정됨으로써 범국민적인 강제저축이 전개되자 생보업계 공동으로 재건직장보험을 개발했다.

이 상품은 69년에 예정사업비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보험기간도 비교적 짧은 직장복지보험과 퇴직적립보험으로 대체됐다. 이 상품은 71년도에 들어서 희망저축보험이라는 단체보험으로 개발됐다.

개인보험은 65년도까지 단체퇴직보험시장에 각 사가 주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개척이 부진했지만 양로보험과 교육보험을 중심으로 꾸준히 판매했다.

63년에 대한생명이 회갑보험, 대한교육보험이 신생보험, 동방생명이 장기양로보험을 개발해 종래 교육보험 일변도에서 탈피했다.

65년도에는 금리현실화로 공금리가 최고 연30%에 이르자 특별배당제도만으로는 타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우세를 점할 수 없자 예정이율이 고율인 단기상품개발이 시도됐다. 동방생명은 65년 연20%에 이르는 5년 단기 양로보험인 신생활보험과 저축보험인 신생활저축보험을 판매했다.

이후 보장성보험을 대한교육보험에서 재판매했고 대한생명이 특약부 특별양로보험이라는 명칭으로 개발, 69년에는 업계공동상품으로 자동갱신부 정기보험을 판매했다.

이후 보험자금의 사회환원이라는 측면에서 각 생보사가 주택보험을 개발·시판했고 종신보장 상속보험이라는 명칭으로 대한생명이 개발해 상속보험도 판매됐다.

70년대에는 교통사고위험을 담보하는 업계 공동상품인 교통재해보장특약도 개발됐다.

73년에는 만기환급부정기보험과 재해특약을 대한교육보험이 개발·판매했고 동해생명도 가족전원을 한 단위로 하는 동해가족보험을 최초로 개발했다.

76년 이후 공동상품제가 도입됨으로써 일반적인 생존, 사망, 양로보험 상품이 전 업계에 단일화됐으며 상이한 상품으로는 동해생명의 성인병보험과 고속버스여객보험이 있었다.

손보업계는 특별법에 의거한 화재보험 가입의무화, 수출입 규모 급증에 따른 해상보험 가입의무화와 성장, 자동차의 급증에 따른 자동차보험의 증가, 신규공장의 대규모 건설과 해외건설사업의 증가로 인한 특종보험의 성장 등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다.

60년대 이후부터는 배상책임보험 등 새로운 특종보험의 개발과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69년에는 가계성보험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장기저축성보험인 가계종합보험을 동양화재가 최초로 개발·시판했다.



■ 1976~1984년

제3차에 걸친 경제 개발 5개년계획 수립시행으로 공업화,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국민소득도 1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가정경제측면에서 부의 축적이 본격화됨으로써 보험업계는 이에 부응한 상품들이 개발됐다.

손보업계는 25년간 독점영업체제로 운영돼오던 자동차 보험이 시장확대와 경영수지악화 등으로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자 83년 일반손해보험회사로 다원화됨으로써 국내 손해보험사(史)의 새장이 열리게 됐다.

자동차보험은 1963년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공포와 함께 1976년 대인무한보상상품이, 1977년에 자동차종합보험이 판매됐다. 1982년에는 정부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시행, 자동차종합보험제도를 뒷받침하게 됐다.

이 당시 각 손해보험사는 자동차보험을 새로이 인가받아 영업을 시작했고 원수보험료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게 됐다. 또한 84년도에는 장기손해보험이 장기화재보험, 장기종합보험, 장기상해보험 등으로 정비되어 그 성장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장기손해보험은 손·생보영역분쟁 종목으로 대두되어 대립이 지속되면서 3년간 신상품인가를 받지 못하다가 보험감독당국의 상품인가 일반기준이 마련돼 일단락 되게 됐다.

생보업계는 77년부터 기업에서 종업원의 퇴직금을 사외유보한 경우 손비혜택을 주는 세제혜택제도 실시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이 개발·판매됐다. 이후 78년도부터는 시중금리와 예정이율과의 차이를 보상해주는 확정배당제도가 실시돼 이와 연계된 백수보험과 종신보험이 판매됐다.

주로 이 시기에 생보사들이 판매한 상품을 살펴보면 종업원퇴직적립보험과 백수보험, 암보험, 인플레이션 대응상품, 고액보장상품, 탈퇴형상품을 들 수 있다.

특이할만한 상품으로는 암보험과 인플레이션 대응상품, 고액보장보험을 들 수 있는데 암보험의 경우 경제성장으로 인한 국민소득의 향상 등으로 성인병이 증가하자 76년 정부의 지시로 탄생하게 된 상품이다.

암보험 등 건강보험 상품은 생보협회와 6개 생보사가 공동 개발했으며 판매초기 실적은 부진했지만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로 현재에는 생보사의 주력상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고액보장상품은 70년대 초에 보장성보험이 증가하면서 개발됐고 78년 동방생명이 무지개보험을 첫 개발·판매했다. 동방생명 무지개보험은 재해사망시 가입금액의 최고 30배까지 보장하는 신개념의 상품이었고 이 후 대한교육보험이 개발한 단체대형보장보험은 최고 20배까지 지급했다.



■ 1985~1996년

이 시기에는 87년도부터 시작된 보험시장의 대·내외 개방으로 생보의 경우 기존 6개사 과점체제에서 33개사로 전환됐다.

또한 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96년 OECD 가입 등으로 보험산업의 추가개방, 국제화가 급진전되었다.

생보업계의 경우 무배당보험 도입필요성을 제기함에 따라 92년부터 개발·판매하기 시작했다. 94년에는 정부의 금융실명제 실시로 제도 금융권의 자금이탈 방지를 위한 대책과 공적연금의 보완제도로 개인연금저축제도가 도입됐으며 96년에는 정부의 저축증대방안의 일환으로 비과세가계저축제도가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이외에도 금융권역간 경쟁에 따라 87년 은행의 연금형 장기신탁상품에 대응하기 위한 업계공동상품인 노후설계연금보험이 개발됐고 90년대 초에는 가격파괴형보험상품도 출시됐다.

이 당시 생보업계 주요상품을 살펴보면 금리연동형상품과 가격파괴형상품, 무배당보험, 개인연금보험이 있었다.

지난 92년 정부는 금융시장 개방화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 가격자유화 방안을 발표했다. 손보업계는 우선 기업성 보험부터 실시 한 후 가계성 보험으로 확대적용하고 완전 자율화 이전에 범위 요율제도를 시행, 급작스러운 자유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또한 교통사고발생율 세계3위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자 정부는 자동차보험료조정억제정책을 실시해 자동차보험의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됐다. 이 당시 손보업계는 금융형 고이율상품인 21세기적립종합보험을 업계공동으로 개발·판매해 자동차보험과 더불어 본격적인 장기보험 시대를 열었다.



■ 1997년~현재

국내 보험산업은 IMF 이후 금융기관들의 퇴출과 실업자의 증가로 보험사들도 대량해약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새로운 돌파구 모색을 위해 다양한 상품 개발에 몰두하게 됐다.

또한 2003년 8월부터 방카슈랑스의 실시로 보험산업은 ‘환골탈태’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됐다. 바야흐로 보험업계도 은행, 증권과 금융권의 한 축을 이루는 대형 기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생보업계는 생·손보의 상해질병 겸영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일반사망보장이 없는 순수상해보험을 개발·판매했고 근로자우대저축보험을 공동상품으로 개발해 은행 등 전 금융권과 함께 판매했다.

생보업계가 10여년간 추진해 오던 기업연금보험은 96년 근로기준법이 마련되면서 보험사에 의한 퇴직연금보험으로 도입근거가 마련됐지만 이후 2차례 근로기준법 재개정으로 은행신탁까지 취급기관이 확대됐다. 현재 제3보험분야의 실손보상 문제를 놓고 생·손보간 입장 차이가 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손보업계에서는 실손보상이 손해보험의 분야이므로 생보사의 허용하지 말아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외에도 25년만에 개정되는 보험업법도 향후 보험산업 발전에 새로운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보업계는 현재 변액형 종신보험과 연금상품을 출시하고 타 금융권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수시입출금 형태의 변액유니버설보험도 출시될 것으로 보여 은행과 투신 등 타 금융기관의 특성을 융합한 하이브리드형 상품개발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손보업계는 보험시장의 새로운 트랜드를 인식하고 기존 보험상품과 매체의 융합을 통한 신개념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손보사들은 온라인을 통한 인터넷보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또한 고객서비스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동차보험의 브랜드화를 도입하는 등 이전 손해보험사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문승관 기자 skmoo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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