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이 거액을 들여 외국산 패키지를 도입하고 계정계 시스템을 한꺼번에 갈아엎는 차세대 전략에 우려를 표시해 왔다.
외국산 패키지를 수십억원씩 주고 들여오면 80%이상을 국내 금융환경에 맞게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에 돈은 돈대로 들이면서도 만족스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틀의 외국산 패키지로는 은행의 중장기 전략과 비전을 반영하는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도 문제였다.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금융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한 최근 몇년 사이에는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중장기적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한번에 계정계 시스템 전체를 갈아엎는 것은 국내 은행들이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은행은 차세대시스템 가동 연기의 원인으로 원활하지 못한 인력 자원 분배, 변화한 업무프로세스 반영 미흡 등 2가지를 꼽았다.
지주회사 설립, 카드분사, BPR(후선업무집중화), 평화은행 통합 등으로 바뀐 내부 업무 프로세스를 차세대시스템에 반영하지 못했고 이런 일련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충분한 인력을 차세대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계정계 패키지로 도입하는 ‘알타미라’의 기술구조와 개발방법론은 90~100% 반영하는 대신 업무 프로세스 부문은 은행 내외부 변화에 맞게 재구성할 방침이다.
또한 업무 프로세스 변화를 차세대시스템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전행 차원의 전략 사업으로 차세대프로젝트를 취급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우리FIS가 은행 경영진에 전달했다.
우리은행의 사례는 국내 은행들이 불과 2~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적어도 5년 이상 활용해야 하는 계정계 시스템을 통째로 바꾸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차세대시스템 구축 전략을 세우고 개발을 시작하던 2년전에는 평화은행 통합이나 카드 분사 같은 변화가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차세대시스템을 ‘전산 업무’라고만 생각하는 인식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은행 임원들이나 전산부서 이외 현업에서는 차세대시스템이 국내외 금융환경 변화와 은행 전략 변화, 중장기 비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FIS의 표삼수 사장은 그룹의 고객정보를 통합하기 위한 ‘통합CRM’, 각 채널(영업접점)을 연결하는 ‘통합 콜센터’, 후선업무를 집중처리해주는 ‘BPR(후선업무집중화)’프로젝트 등이 지주회사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전략시스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차세대프로젝트에 전산 인력과 비용이 대량 투입되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합 CRM이나 콜센터 구축을 지원할 여력이 줄어든다. 인력 부족으로 당장 현재의 레거시 시스템 운용 부담도 늘어난다. 내부의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IT자회사인 우리FIS가 수익센터로 변신하는 시점도 연기될 수 밖에 없다.
차세대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우리금융그룹이 명실상부한 지주회사로써 발전하는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 차세대시스템의 가동 연기가 지주회사 전략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해 은행 임원들이 IT인프라와 전략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한 대형 IT업체 관계자는 “시스템도 생물처럼 환경에 따라 진화할 수 있도록 설계하도록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선 기자 u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