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당시 우승은 독일에서 개최된데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십분발휘한 독일팀을 꺾고 쟁취한 승리였기에 미첼의 인기는 충천할 정도였다. 이 공로로 그는 베아트릭스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고 최고인기를 누렸다. 그해 그는 세계축구연맹이 수여하는 최고우수지도자상을 받아 전세계 축구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이런 것들이 인연이 돼 미첼은 독일의 바이엘 리버쿠젠팀의 감독으로 스카우트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이 팀은 한때 차범근씨가 뛰었던 유명한 팀으로 올해에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분데스리가의 명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팀에서 겨우 한 시즌만을 마치고 축출되듯 독일을 떠났다. 그 이유는 성적부진이었다.
이 때 독일을 떠나면서 그는 이같이 말하면서 “그 (영예의) 눈이 녹으면 오히려 질척댈 뿐”이라고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최고의 명예와 존경을 받았기에 아무 자리나 함부로 갈 수 없고 때로는 장애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당시 미첼의 패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분석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관습적 전통을 깨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독일팀을 이끈 루디 푀일러처럼 과감하게 개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푀일러는 약체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외부적으로는 게르만 혈통을 우선시하는 오랜 혈통주의와 민족 우월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또 내부적으로는 축구계가 놀랄 정도로 파격적으로 신인들을 발탁, 전면에 포진시켰다. 23명의 엔트리 중 14명이 신인이라고 한다. 내부로부터의 혁명이다. 이같이 팀 내외에 걸친 과감한 개혁을 먼저 이루어내지 못하고 선수들의 기량향상에만 역점을 두다보니 미첼은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도 우리 대표팀을 비슷한 방식으로 개혁해 갔다. 체력증진훈련과 함께 국가대표팀의 내부개혁을 병행한 것이다. 이번에 축구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과 히딩크에 대한 온 국민의 열광적 추앙동기는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뿌리깊고 골치아팠던 학연과 지연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심지어 종교장벽까지 뛰어넘어 실력위주로 발탁했고 선수들을 고루 격려했다. 과거 동네 조기축구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국가대표팀의 의식과 훈련풍토를 실력위주의 건전하고 평등하게 권익이 보장되는 선진국 축구팀의 분위기로 바꿔갔다.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 또 과거 국가대표팀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새 얼굴이라는 부정적 요인들을 오히려 긍정적 요소로 활용했다. 아무튼 그는 이 같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잠자고 있던 우리 선수들의 잠재능력을 도출해 냈고 그 힘을 뭉치게하여 세계무대로 진출시켰다. 그리고 국민적 여망과 함께 어울려 유형·무형의 거대한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정의한 ‘창조적 파괴’를 창출해 낸 것이다. ‘낡은 것은 파괴, 도태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혁신이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일어나 경제구조를 변혁시키듯’ 한국 축구계에 그와 같은 파괴의 시동을 점화시켰고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낸 것이다.’
금융계는 이번 한국팀의 월드컵4강 진출과정과 이를 주도한 히딩크 감독의 개혁프로그램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은행간 합병, 강제명퇴 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런 변화의 인자들이 과연 얼마만큼 새로운 은행건설을 위한 창조적 파괴에 도움이 됐으며 금융개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근본적 개혁은 외면하고 새 금융기법의 전수 등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기량향상에만 열중하다가 도중하차한 미첼처럼 한 시즌만 끝내고 ‘어젯 밤 내린 눈’을 되새기며 떠나거나 또는 ‘질척대는’입장으로 전락할 염려는 없는지...... 2002년 월드컵 폐막을 보면서 한번쯤 되새겨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