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부산은행 서울 분실에서 만난 김 행장은 비슷한 연배의 다른 행장들과는 달리 매우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름 석자도 못 들어보았을 법한 기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부산은행의 전망은 너무나 좋다. 믿어라”라는 식의 김행장 화법은 기자를 꽤나 당혹시켰다.
당시 부산은행 관계자들도 김 행장은 은행경영 전반은 물론이고 아래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잘 이끌어 부산은행이 금감원의 경영개선권고를 벗어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그래서 김 행장이 지난해 5월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부산은행 임원들이나 노조의 반발은 매우 컸다. 김 행장만한 경영능력을 발휘할 CEO후보가 없었던 터라 부산은행 임직원들의 이같은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금융계 선배 몇 분의 적극적인 권고로 결국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김행장은 취임 직후 터진 ‘현대건설 사태’를 무난하게 해결, 부산은행장 시절의 ‘호평’을 이어갔다.
그러나 ‘사람과 시장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이 위기에 처한 한국 대기업 처리’라는 말이 있듯이 김 행장은 하이닉스 반도체 문제로 다시 시험대에 올라야 했다.
외환은행이 IMF위기 이전 시절의 ‘강력한’(外信들은 아직도 종종 powerful이라는 수식어를 외환은행 앞에 달고 있다)국책은행도 아닌데다, 총부채가 12조원을 넘나드는 ‘하이닉스 태풍’은 어느 은행이 주채권은행이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김 행장은 그러나 정부-하이닉스-채권금융기관등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 3각 구도에서 하이닉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외환은행만해도 주인이 정부-코메르츠-일반주주등 3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덤터기를 혼자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김 행장은 이전의 쾌할함과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악전고투했다. 시장은 반대로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무용론’등을 운운하며 외환은행과 김 행장을 ‘험담’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외환은행이 채권단회의에서 90% 안팎의 찬성으로 하이닉스 채권의 출자전환과 신규자금 지원안 등 정상화안을 모두 통과시켰을 때 시장은 여전히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외환은행이 하이닉스 정상화안을 ‘무력’으로 통과시켰다며 ‘뒷다리 잡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 시장은 “청산가치 기준으로 채무면제 방식을 택한 은행들의 수지부담이 오히려 작다”며 하이닉스 처리방안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볼멘소리를 하며 외환은행을 탓했던 다른 은행등 채권단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물론 하이닉스의 근본적인 문제 풀이는 시장과 하이닉스 자체에 달려 있다. 하이닉스가 구조조정과 설비매각등을 통해 자금을 적기에 마련하고,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어야만 장래가 긍정적이다.
김경림 행장과 외환은행은 우리경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어려운 난제를 어렵사리 해결한 것이다. 이제 칼자루를 시장과 하이닉스에 돌려주길 바라며, 김 행장이 다시 예전의 ‘정력남’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송훈정 기자 hj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