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브랜드마케팅의 시대이다. 기업의 대표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이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금융산업의 경우에는 금융기관들이 합병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거나 외국기업의 투자가 빈번히 발생함에 따라 브랜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즉 기존에 구축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합병 쌍방의 이미지를 혼합한 브릿지 브랜드를 개발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뉴브랜드를 개발한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인식상에 있는 이미지를 세심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해외기업들은 일찌감치 이러한 흐름을 간파, 기업이미지 제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금융상품의 브랜드화에 전력하고 있다. ‘시티뱅크’의 CI프로젝트나 리볼빙카드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초반 ‘하나은행’을 필두로 금융브랜드마케팅이 시작됐다. IMF를 지나면서 많은 금융기업들이 사명을 바꿔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한빛은행’, ‘굿모닝증권’ ‘메리츠증권’ 등이 그 예이다.
이후 후발은행을 중심으로 몇몇 기업 아이덴티티 작업을 진행했지만 시각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CI로 인해 각 금융기관들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이 브랜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기업브랜드를 시대별로 분석해 보면 80년대까지는 한자어 이름 일색이었다. 한자어 이름은 지역을 나타내는 ‘서울신탁은행’ ‘부산은행’ 등과 국책의 목적을 나타내는 ‘상업은행’ ‘외환은행’ ‘장기신용은행’ ‘주택은행’으로 구분된다. 증권사의 경우는 주로 은행이나 대기업명을 딴 회사들이 많았는데 ‘대우증권’ ‘삼성증권’ ‘동부증권’ ‘동양증권’ 등이 있었다.
90년대 접어들면서 한글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나은행’ ‘보람은행’ ‘나라종금’ ‘한길종금’ 등의 한글이름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한자어 이름의 금융기관들의 이미지가 문턱이 높았던 반면 한글이름의 이미지는 금융기관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IMF 이후에는 금융환경이 글로벌화 되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회사를 중심으로 영어권 이름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메리츠증권’ ‘대유리젠트증권’ ‘굿모닝증권’ ‘마이다스자산운용’ ‘SEI에셋코리아’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어권 이름은 전문성과 외국자본과의 연계를 암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선진이미지와 안정감을 부여했다. 이러한 금융환경 전반의 글로벌화, 선진투자기법의 도입증가, 외래합작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금융기관명은 많은 부분이 영어사명(기업브랜드)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모든 회사의 기업이미지에 공식처럼 부합하지는 않았다.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합병시 사명을 ‘국민은행’으로 그대로 유지한 것이나 조흥은행과 강원은행의 합병시 ‘조흥은행’을 당분간 유지하면서 ‘CHB’라는 영문사명을 병기해놓은 것은 기업명을 브랜드자산으로 인식하고 의사결정한 좋은 사례이다.
증권업계에서도 회사명을 바꿔 이미지변신에 성공한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쌍용투자증권’이 ‘굿모닝증권’으로 개명, ‘쌍용그룹’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자산규모 1위의 합병은행의 사명을 ‘한빛은행’으로 바꾼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브랜드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글이름은 한자이름보다 친근성은 높지만 규모감에서는 열등한 이미지를 가지는데 사명을 친근한 한글이름으로 정함으로써, 자산규모 1위의 역사성을 지닌 은행이 일순간에 후발은행으로 포지셔닝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상호신용금고’의 새로운 사명인 ‘오렌지S&F’는 주타겟들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신세대적인 감성으로만 접근한 경우다.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소비자들의 인식 속의 고유이미지를 놓치고 있는 경우라는 지적이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