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문에서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해 대외신인도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은행 BIS 비율을 높이고 부실채권도 정리했다. 그러나 부실 금융기관 정리과정에서의 형평성 문제 및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사후관리가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BIS 비율 준수 등 획일적 규제에 의해 금융자원의 배분이 원할하지 못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을 통해 정부는 총 485개(23.1%)의 금융기관을 정리했다. 정리방법은 합병, 자산부채 이전방식(P&A), 청산 등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 결과 대외신인도가 상승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막대한 부실과 관련한 손실 분담, 책임소재 등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가 92조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금융권 부실을 대거 정리했다. 그러나 기업부문 부실이 금융부문으로 추가 이전돼 부실 채권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우사태, 워크아웃 기업의 도덕적 해이 등에 의한 금융권 부실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금융 구조조정 결과 우리 경제는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은 후 급속히 회복했으나 올들어 침체 조짐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는 금리 및 환율 등 주요 지표상으로는 IMF 이전 수준을 상회하고 있으나 각종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금리의 경우 IMF 직후 고금리 정책으로 한때 30%를 상회했다가 98년말부터 한자리대로 진입했다. 환율도 외환부족으로 한때 달러당 2000원대에 육박했으나 현재는 1200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국내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국내외 기관들의 환리스크 헤지 등으로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하는 등 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채권시장도 제대로 작동되지 못해 기업들의 자금 부족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투신사 및 종금사의 퇴조와 기업부실 증가 등으로 일부 우량기업 외에는 채권 발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주식시장도 98~99년 대규모 증자 등에 따른 공급과잉의 후유증과 기업의 재무구조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이유 등으로 밑바닥을 기고 있다. 종합주가 지수는 올들어 절반 수준인 500선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어 기업 자금조달에 애로가 되고 있다.
이같은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시중자금이 우량 금융기관으로 집중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역간, 금융기관간 차별화가 진행돼 자금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즉 종금사와 투신사 자금이 대거 이탈해 은행으로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만해도 총 50조원의 자금이 은행권에 유입됐지만 이중 30조원이 가계대출 및 은행의 국공채 투자 등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특히 2차 은행 구조조정이 병행되면서 안전한 일부 우량은행의 수신이 급격히 증가했다. BIS비율 상위 5개 은행의 수신고 점유율이 97년말 30.7%에서 2000년 6월말 49.4%로 크게 증가했다.
IMF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중의 하나가 외국인들의 시장 지배 현상이다. 외국인 보유 국내 주식의 시가총액 비중이 2000년 9월말 현재 29.4%(64.9조원)로 97년말의 14.6%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증가했다. 외환거래에서도 선물환거래의 외국인 비중이 61.6%로 97년보다 10.8%포인트 높아졌고, 현물환도 48.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이 인수 및 지분참여의 형태로 금융산업에 진출해 국내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국민 외환 제일 하나 한미은행은 1대 주주가 외국인이며 외환 제일 주택은행등에는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외국인 1대 주주의 은행 지분 점유율은 지난 8월말 현재 41.7%이다.
기업들이 돈가뭄에 시달리며 무너질 위기에 처했는 데도 은행이 지원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 외국인들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외국자본의 증권업 보험업 진출도 활발해 이 분야에서도 시장점유율은 대폭 확대됐다. 외국증권사 국내지점의 시장점유율은 거래대금 기준으로 10.6%로 증가했다. 외국 생보사의 시장점유율도 8.2%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는 아직도 IMF의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단 실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에 이미 투입된 64조원의 공적자금 외에 40조원(기투입자금 회수분 10조원 포함시 5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공적자금 재투입분 18조6000억원과 공공자금 27조원을 포함할 경우 현재까지 총 투입액은 109조6000억원이며 추가 조성분까지 합하면 공적자금은 총150조원을 넘는 엄청난 규모다.
문제는 공적자금의 조성과 투입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금융전문가들은 적어도 수십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이 또 필요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대마불사의 사례를 남긴 현대건설 등의 기업들이 다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 이에 따른 추가 부실만 따져봐도 수조원에 달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98년부터 대우그룹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대마불사등의 비시장적 논리와 무원칙한 경제 정책이 1년만에 수십조원의 추가 부실을 일으킨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같은 IMF 위기 이후 3년간의 과정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 경제가 전형적인 ‘위기-반응-회복-자만’의 경로를 밟아왔다고 지적한다. 우리보다 앞서 외환 및 경제위기를 겪은 국가들의 전형적인 전철이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현 위기징후가 진짜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려면 철저한 구조조정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단기 보완책을 병행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구조조정은 대담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으로 기업 자금 경색을 완화하고 건설경기를 부양하며 아울러 실업자 대책을 펴는 등 등 장단기 정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훈정 기자 hj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