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권사장 개인의 처지는 달라지겠지만, 금감원 발표 이후에도 KTB는 거의 동요가 없는 모습이다.
이미 몇주전부터 권사장에 대한 금융·사정당국의 내사설이 급속히 퍼졌고, 이달 들어 ‘수사 착수’ ‘구속 임박’등의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회자된 탓도 있다. 이미 권사장 본인과 주변의 인물들은 물론이고 KTB내부에서는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닥쳐올 상황에 대해 치밀한 준비를 해왔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KTB측은 금감원 발표시점 훨씬 전부터 간부회의를 권사장이 빠진 상태로 이영탁 회장이 주재했다. 권사장 본인을 배제한 채 진행한 회의에서는 ‘만일의 상황’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금감원이 고발사실을 발표하기전, 구체적으로는 지난 5일경부터 다시 권사장이 회의를 주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본인이 직접 논의의 핵심에 서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회장이 주관하에 대책을 세웠던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며, 그 기간동안 어지간한 문제들은 정리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권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KTB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당장 ‘구속’등의 조치에 직면한다해도 이영탁회장이 사실상의 대리경영자로 기능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권씨가 KTB사장으로 취임한 후 영입한 인물이다. 재경부에서 잔뼈가 굵어 교육부차관, 총리실 행조실장을 역임한 관료 출신.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권사장이 거듭 권해 합류하게 됐다. 이회장의 역할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얼굴마담‘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권사장이 사인한 결재서류는 모두 이회장을 거치도록 했을만큼 경영전반을 ‘스크린’해 걸러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했다는 얘기다.
그런만큼 권사장 유고시 이회장은 충분히 경영의 구심점에 설 수 있으며, 신뢰관계도 충분하다는 것. 주요 재벌그룹이 대주주로 포함돼 있지만, 사법처리가 되더라도 권사장의 지배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물론 수사결과 심각한 내용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단기적으로 봐도 KTB의 경영구조가 별로 달라질 게 없다. KTB직원들은 의외로 한가한 표정들이다. 이미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거니와, 사안도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KTB와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이 올 이유가 없으며, 고발의 성격도 권사장 개인이 완전히 매장될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
그래서 금감원 발표당일 사내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KTB주가가 일시 하락하면 무조건 주식을 사자’는 얘기들이 나돌았을 정도. 그러나 금감원 발표 다음날인 지난 11일의 KTB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해 직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권사장에 대한 평가는 결국 검찰의 엄정한 수사결과를 통해서야 내릴 수 있겠지만, 이미 그는 여론으로부터 호된 매를 맞았다. 일반인들에게는 ‘부도덕한 자본가’ 또는 ‘혼란을 틈타 돈을 번 사기꾼’정도의 극단적인 이미지로 각인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일방적인 시선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과연 자본시장에서 급격하게 부를 축적한 신흥 자본가를 정서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형닫기김형광고보고 기사보기진 前세종증권회장과 김석기 중앙종금사장 역시 외환위기 이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였지만, 결국 ‘사법적’ 재단에 앞서 ‘여론’의 재단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례로 꼽힌다.
법원은 그들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들을 ‘희생자’로 보는 시각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사장 역시 이들의 연장선상에서 거명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왜곡된 평등의식’이 ‘자본시장의 영웅’을 탄생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가지는 권사장이 ‘정치적 안배’를 소홀히 했다는 점과 관련돼있다. 권사장 내사설에는 ‘주변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얘기가 항상 따라다녔다. 정치권등 권부와의 접촉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젊은 사업가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권사장을 고발한 배경중의 하나였든 아니든, 아직도 그런 얘기들을 귀담아 들을 수 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성화용 기자 yong@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