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외환위기가 시작된 이후 다른 은행에 비해 유난히 감사에 시달렸다. 98년 2월 2일부터 12월 19일까지 매월 열흘 또는 보름이상을 감사받는 데 소비했을 정도. 여기에 임시국회, 정기국회 때마다 국회에 보고서를 내야했고, 국정감사때는 은행 전체가 일을 못하고 매달려야 했을 정도. 또 회계법인의 경영진단에 2개월, 결산감사에 3개월 등이 소요된 것을 감안하면 이만저만 시달린 게 아니다. 이런식의 소모적인 중복 감사가 은행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독 이번 금감원 감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산은 직원들은 올해 처음 감사를 나온 금융감독원이 ‘산업은행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노조측은 그 사례로 ‘언론 플레이’를 들고 있다. 금감원의 본감사가 시작된 것이 지난 2월23일인데, 바로 그 다음날인 24일 저녁 일부 조간신문(25일자) 가판에 산업은행의 부실여신 및 적자규모가 보도됐다. 그 자료는 금감원의 예비감사 기간동안 산업은행측이 제출한 숫자 그대로였다. 산은측은 금감원이 고의로 자료를 흘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부실현황을 부각시켜 감독강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해당 기관을 길들이는 유치하고 낡은 수법의 전형이라는 것. 한나라당의 김재천닫기

산업은행 직원들의 또 다른 불만은 금감원에 의해 산업은행이 새삼 부실자산·적자로 상징되는 불량은행의 대표격으로 되새김질 당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사람들은 할 말이 많다. 이미 국회 청문회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금융기관 부실의 상당한 책임은 권력층의 청탁과 압력, 정경유착에 돌려질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산업은행은 전임 총재가 구속까지 되는 등 대표적인 피해자중의 하나라는 것.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은행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안은 부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도 일방적인 매도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산은측은 또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부실 및 적자 규모가 알려지면서, 당시 무디스등 신용평가기관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만약 금감원이 이같은 자료를 흘린 게 사실이라면, 감독기관 스스로 국익에 배치되는 일을 한 셈이라는 것.
직원들의 거부감이 폭발직전에 이르자 산업은행 경영진들도 당혹스러워 하고있다. 지난 3일 부장회의를 소집해 ‘불쾌해도 참고 수감을 잘 받도록하자’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진이 직원들의 반감을 진화하고 나섰지만, 산업은행의 ‘反 금감원 정서’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금감원도 산은 노조의 강한 반발에 당혹과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 감사 과정의 이같은 파열음은 감독당국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해묵은 불만이 이례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금융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성화용 기자 yong@kftimes.co.kr